(168)양촌선생시 11수陽村先生詩 11首

  1. 양촌선생시 11수陽村先生詩 11首

                              작자作者 : 양촌 권 근陽村 權 近

                              번역飜譯 : 청계 조면희淸溪 趙冕熙

                                         출전出典 :<양촌선생문집陽村先生文集>

    확대[현암사] 온달이야기 신고

    조면희 글/이영원 그림 | 현암사 | 2001-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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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一> 입직入直諫院

    --癸亥除夜。入直諫院--

    야여연장진, 춘수루이생.

    夜與年將盡。春隨漏以生。

    거연첨갑자, 우차하원정.

    居然添甲子。又此賀元正。

    광직언하보, 무재로가경.

    曠職言何補。無才老可驚。

    천문미개쇄, 불매청계성.

    千門未開鎖。不寐聽雞聲.

    *해설 : 간원에서 숙직하며

    --계해년(우왕9, 1383년. 32세) 제야(除夜, 섣달 그믐 밤)에 간원[司諫院]에서 숙직하며.--

    한해는 오늘 밤과 함께 다 끝나려 하고

    봄은 물방울시계를 따라 다가오고 있지.

    어느 새 갑자년 새해, 나이가 보태지니.

    또 이렇게 새해의 초하룻날을 축하하네.

    간언의 직책 다 못해 무슨 도움 될까?

    재주 없이 늙어만 감이 놀랍기만 하네.

    아직 궁성의 문들 열리지 않았는데

    잠 못 이루고 닭 우는 소리만 듣네.

    <二> 무진년서북도종군작戊辰年西都從軍作

    차부벽루시운次浮碧樓詩韻(摠5首 中 一首拔萃)

    승일연안출곽유, 산전걸각부장류.

    勝日連鞍出郭遊。山前傑閣俯長流。

    연연원수평교외, 범범편주고도두.

    娟娟遠岫平郊外。汎汎扁舟古渡頭。

    천재번화상대사, 사시풍경기종휴.

    千載繁華相代謝。四時風景豈終休。

    등림창망동남구, 표묘연파송객수.

    登臨悵望東南久。縹緲烟波送客愁。

    *해설 : 무진년 (1388년, 우왕14, 37세) 평양지방으로 종군하여 가며 지은 작품

    시제詩題 : 부벽루 시에 차운함. (총 5편중 1편 뽑음)

    좋은날 줄지어 말 이끌고 성문을 나가니

    산 앞에 웅장한 누각 긴 강물 위에 섰네.

    넓은 들판 밖에는 산봉우리들 아름답고

    옛 나루터엔 조각배들이 둥둥 떠 있네.

    천년의 번화는 시대따라 바뀌어 왔지만

    사시절의 풍경만은 쉬지 않고 순환하지.

    누각에 올라 안타까이 동남 쪽을 바라보니

    아득히 흐르는 물결 나그네 근심 실어가네.

    <三> 용주로상龍州路上

    --戊辰冬十月二十四日。奉西北面宣慰之命。龍州路上。時牧隱奉使朝京。--

    상상조천청자행, 군왕사온위충성.

    上相朝天請自行。君王賜醞慰忠誠。

    나사원섭치천리, 불욕투안구일생.

    那辭遠涉馳千里。不欲偸安苟一生。

    새설삭풍취심렬, 해운잔일조유명.

    塞雪朔風吹甚冽。海雲殘日照猶明。

    공귀정포양춘택, 하행사민변태평.

    公歸定布陽春澤。何幸斯民見大平。

    *해설 : 용주로 가는 길에서

    --무진년(1388년, 우왕14, 37세) 겨울 시월 이십사일 서북면선위사의 임명을 받고 용주로 가는 길에서. 당시 목은(이색)이 중국에 사신으로 조회하러 감.-

    상상의 몸으로 중국 사행을 자청하여 가니

    임금께서 술을 내려 그의 충성 위로하였네.

    천리 먼 길 어렵다 한들 어떻게 사양하리?

    일생을 구차스레 편함만 추구하지 않았네.

    국경에 눈 내리고 북풍도 매섭게 부는데

    바다 구름 사이로 지는 해가 밝게 비치네.

    공께서 돌아오면 황제 은혜 나라에 펴리니

    태평세월 만난 우리 백성 얼마나 다행하리.

    <四> 홍무22년세재기사추팔월회일洪武二十二年歲在己巳秋八月晦

    <봉사록奉使錄>(一)

    초팔일진가사연잉사初八日進謝賜宴仍辭。

    효수군언입금문, 지척천위망지존.

    曉隨羣彥入金門。咫尺天威望至尊。

    풍송로연향만전, 운이선장일림헌.

    風送爐烟香滿殿。雲移仙仗日臨軒。

    송당사연은난사, 금폐사귀어갱온.

    公堂賜宴恩難謝。禁陛辭敀語更溫。

    주출액원유축적, 차심응시도가존.

    走出掖垣猶踧踖。此心應是到家存。

    *해설 : 홍무 22년(기사년, 창왕1. 1389년, 작자38세) 6월에서 11월까지 명나라 사신으로 갔을 때 쓴 <봉사록奉使錄>에서 뽑음

    시제 : (8월)초여드렛날 대궐에 나아가 사연에 사은하고 곧이어 하직함.

    새벽에 여러 선비 따라 천자의 대궐 들어가니

    하늘 같은 위엄 가진 용안을 지척에서 뵈었네.

    향로의 연기는 바람 따라 전각에 가득 차있고

    구름 같은 의장기 따라 황제가 난간에 임했네.

    공당에서 연회를 열어준 은혜도 너무 감사한데

    다시 천자께서 말씀하신 작별인사도 따사로웠네.

    궁전을 벗어나 밖으로 나와도 아직 얼떨떨하니

    이러한 내 마음 집으로 돌아가도 그대로 있으리.

    *낱말

    1. 금문金門 : 천자의 구전 문.

    2. 액원掖垣 : 궁전을 둘러싼 담장.

    <봉사록奉使錄>(二)

    聞十國(自注。秦,晉,燕,齊,楚,周,蜀,魯,湘,潭。)親王皆朝京師。

    열작분모토, 인친비본지.

    列爵分茅土。仁親庇本支。

    부행봉건일, 사유회동시.

    復行封建日。斯有會同時。

    인지주종성, 용안한업희.

    麟趾周宗盛。龍顏漢業煕。

    소신문성미, 가영재성시.

    小臣聞盛美。歌詠載成詩。

    *해설 : 10개 국의 천자의 친척 왕들이 경사에 조회하러 왔다는 소식을 듣고.

    자주 : 10국은 ‘진秦ㆍ진晉ㆍ연燕ㆍ제齊ㆍ초楚ㆍ주周ㆍ촉蜀ㆍ노魯ㆍ상湘ㆍ담潭.’임.

    작위의 차례를 따라 나라 땅을 나누어 주니

    사랑하는 친족끼리 본손과 지손을 보호하지.

    제후를 봉하는 날을 다시 시행하자니

    이와 같이 함께 모이는 때가 있다네.

    훌륭한 황손들은 주나라처럼 번창하고,

    천자의 높은 위엄 한나라처럼 빛나리.

    하찮은 이 신하, 성대한 소식 듣고

    노래로 찬양하고 시를 지어 읊었네,

    *낱말

    1.모토茅土 : 옛날 천자가 제후를 봉할 적에 그 지방의 방위색에 알맞는 색깔의 흙을 흰 띠에 싸서 나누어주면, 제후는 이 흙을 받아 사직단社稷壇을 만든 데서 나옴.

    2.인지麟趾) : 인자한 황손皇孫이 많음을 말함.《시경》 주남 인지지麟之趾에서 나옴.

    3.용안龍顔 : 황제의 얼굴을 말함. 한 고조漢高祖는 얼굴이 ‘코가 높고 용의 얼굴[隆準龍顔]’이라고 한데서 나옴.《사기 한고조본기史記 高祖本記》

    <봉사록奉使錄>(三)

    과압록강過鴨綠江

    원유새북여천남, 금일사두우계참.

    遠遊塞北與天南。今日沙頭又係驂。

    학야만산청사대, 압강추수벽어람.

    鶴野晚山靑似黛。鴨江秋水碧於藍。

    고향루입객중몽, 이역종귀취후담.

    故鄕屢入客中夢。異域終敀醉後談。

    희청정위소식호, 불사배표이침감.

    喜聽庭闈消息好。不辭杯杓已沈酣。

    *해설 : 압록강을 건너며(9월, 돌아오는 도중)

    멀리 국경의 북쪽과 남쪽지방 두루 구경하고

    오늘 이 강가의 모래톱에 또 말고삐를 맸네.

    학이 사는 요동 산은 석양에 눈썹처럼 푸르고,

    오리 대가리처럼 푸른 강물은 쪽빛보다 진하네.

    나그네 생활 중에 고향은 꿈속에 자주 보았으나

    돌아간 뒤 이국 모습은 술취한 뒤 이야기거리지.

    부모님 편히 계신 안부 반갑게 들었으니

    권하는 술 사양치 않고 흠뻑 취해버렸네.

    <五> 己巳仲冬晦。以言事竄牛峯。未閱月。國家代德。又爲臺評所貶。遠謫寧海。風霜辛勤。山水跋涉。可恠可愕

    *해설 : 기사년(창왕1. 1389년, 38세,)년 11월 그믐에 말을 잘못한 빌미로 죄를 얻어 우봉으로 귀양갔으나 한달이 안 되어 나라의 국왕이 바뀜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또 대관의 탄핵[臺評]으로 멀리 영해지방으로 귀양 가게 되었는데 추위의 어려움과 험한 길의 곤궁한 상황은 놀라울 뿐이다. (이렇게 신미년인 1391년까지 2 년여를 귀양 생활하는 중에 쓴 수십 편의 시가 <남행록>인데 본인은 여기서 두어 편을 발췌했음)

    <남행록南行錄>(一)

    도익주到益州

    洪武庚午夏五月。逮繫淸州。因有大水之警。蒙宥從便。未幾又被臺評。謫來益州。其夜大雷電以雨。明日記于壁上。時白露節後九日也。

    서원당일수만천, 사생홍은이패연.

    西原當日水漫天。肆眚洪恩已霈然。

    차야익주뢰우급, 수련축객독무면.

    此夜益州雷雨急。誰憐逐客獨無眠。

    *해설 : 홍무 경오년(공양1년, 1390년, 39세) 여름인 5월에 청주에서 귀양생활을 하는 중에 나라에서 홍수의 재앙을 받은 것 때문에 하늘의 노여움을 푼다는 의미로 사면을 받게 되었는데 곧이어 또 대관들의 탄핵을 받아 익산으로 귀양을 왔다. 그날 밤에 번개와 벼락을 치며 큰 비가 내렸으므로 다음날 숙소의 벽 위에 이 시를 썼다. 때는 백로절 9일 뒤이다.

    -익산[(益州]에 이르러-

    청주[서원]에 있던 그날 홍수 하늘에 닿을 듯해

    과오로 지은 죄를 용서하는 은해 내렸는데.

    이날 밤 익산에 천둥과 번개 급박하게 일어나니

    쫓겨난 나그네, 잠 못 드는 걸 불쌍히 여겨선가?

    *낱말

    1.익주益州 : 전주의 옛 이름 익산益山을 지칭.

    2.종편從便 : 죄지은 사람을 사면赦免하여 서울 밖의 편리한 곳에 가서 살게 한 일.

    3.서원西原 : 청주淸州의 옛 이름.

    <남행록南行錄>(二)

    중추中秋

    (1)

    거세봉추제로동, 여금적재익산중.

    去歲逢秋齊魯東。如今謫在益山中。

    연년가절사귀객, 득주수안우일홍.

    年年佳節思歸客。得酒愁顔又一紅。

    (2)

    추풍옥로세은하, 월색유래차야다.

    秋風玉露洗銀河。月色由來此夜多。

    추창부운능폐일, 정배일문욕여하.

    惆悵浮雲能蔽日。停盃一問欲如何。

    *自註。是日密雲。

    (3)

    동노취적로승가, 건부호래파비파.

    僮奴吹笛老僧歌。蹇父呼來把琵琶。

    수신양촌다흥미, 적래기사역감과.

    誰信陽村多興味。謫來奇事亦堪誇。

    *해설 : 중추(中秋 : 음력 8월)

    이글도 앞의 시와 마찬가지로 작자 39세 때 귀양 생활 중에 쓴 시로서 운의 구조로나 대구 등의 형식으로 볼 때 절구 3수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

    (1)

    지난핸 사신 행차 중국[齊魯]에서 맞았는데

    지금은 귀양 중에 익산에서 맞이했네.

    해마다 중추가절에는 고향 돌아가고 싶은 나그네

    술을 마시자 수심에 잠긴 얼굴 또 한번 붉어지네.

    (2)

    가을바람 옥 같은 이슬이 은하를 씻어 내린 듯

    이날 밤의 달빛은 예로부터 유별나게 밝았었지.

    애닲다, 뜬 구름 같은 간신들 임금총명 가리니

    술잔 들고 앉아 한번 묻노라, 어떻게 하려는지.

    *자주自註 : 이날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음.(작자는 다음에 독자들의 오해를 풀기 위해 주를 낸 듯)

    (3)

    어린 종놈 피리 불고, 늙은 중 노래하니

    건부를 불러다가 비파 줄을 뜯게 하였네.

    그 누가 나 양촌이 흥 많다고 믿었나봐,

    귀양생활 중에 기이한 일이라 자랑할까?

    <남행록南行錄>(三)

    봉사전주쉬奉謝全州倅

    --全州倅歸妓不納。後又惠餚酒。以詩奉謝--

    빈사선탑학관공, 만경구연색즉동.

    鬂絲禪榻學觀空。萬境俱捐色卽同。

    단자미능제구업, 홀승향미감심충.

    但自未能除口業。忽承香味感深衷.

    *해설 : 전주 원에게 감가함

    --전주의 원[全州倅]이 기생을 보내 주었으나 받아들이지 않자, 뒤에 또 안주와 술을 보냈으므로 시를 써 보내어 감사함을 표함.--

    흰 머리로 선탑에서 공의 세계 배우면서

    온갖 경지 버렸으니 여색 또한 버렸었네.

    다만 먹는 업보만은 버릴 수가 없었는데

    문득 좋은 맛 받으니 진심으로 감사하이.

    *낱말

    색공色空 : 불교용어의 색즉시공色卽是空에서 온 말.

    <남행록南行錄>(四)

    경오제애庚午除夜

    차일시제야, 금오재이향.

    此日是除夜。今吾在異鄕。

    청등조수암, 백발대수장.

    靑燈照睡暗。白髮帶愁長。

    산해신류락, 정위몽묘망.

    山海身流落。庭闈夢眇茫。

    하혐초췌구, 명발득소광.

    何慊憔悴久。明發得韶光。

    *해설 : 경오년(공양1년, 1390년, 39세) 섣달 그믐밤

    오늘이 바로 섣달 그믐밤인데

    지금 나는 타향에 와 있다네.

    푸른 등불은 어둠 속 자는 모습 비추고

    흰 머리는 근심 때문에 더 많이 자라네.

    산촌과 해변에 나의 몸 떠돌아다니니

    부모님 얼굴 모습 꿈속에도 아득하네.

    오랜 고생으로 초췌한 모습 탓하랴?

    내일이며 화창한 봄날을 맞을 텐데.

    <남행룍南行錄>(五)

    신미원월辛未元月

    사십이운로, 차언금신연.

    四十已云老。此言今信然。

    투생삼출후, 미사백년전.

    偸生三黜後。未死百年前。

    취몽공명오, 궁수학술편.

    醉夢功名誤。窮愁學術偏。

    감희신불동, 요탕약정현.

    敢希心不動。搖蕩若旌懸。

    *해설 : 신미(공양3년, 1391년, 40세) 정월[元月]

    사십이면 벌써 늙었다고 이르는데

    이 말 지금 생각하니 믿을 듯하네.

    세 번 쫓겨나서도 살 수 있으니

    백 년 되기 전에는 죽지 않겠네.

    공명에 취한 꿈이 일생을 그르치어

    궁한 근심 속에 학술에만 치우쳤네.

    마흔 살이라고 감히 불혹을 바랄까?

    매달린 깃발처럼 흔들려 몸부림치네.

    <六> 전하문안태상왕殿下問安太上王

    --辛巳冬十月初九日。太上王浴于平州溫井。殿下問安。次于歧灘。其夜微雪--

    상궁서수욕온천, 성문신심일익연.

    上宮西狩浴溫泉。省問宸心日翼然。

    금위효엄래야외, 행주모설만강변.

    禁衛曉嚴來野外。行廚暮設滿江邊。

    한성미세삼경설, 난기환첨만조연.

    寒聲微洒三更雪。暖氣還添萬竈煙。

    차지석증배우렵, 수지금일승당년.

    此地昔曾陪羽獵。須知今日勝當年。

    *해설 : 전하께서 태상왕을 문안함

    --신사년(태종1년, 1401년, 50세) 10월 9일 태상왕(태조)이 평주 온천[溫井]에서 목욕하고 있는 때, 전하(태종)가 문안하러 가서 기탄에 묵었다. 그날 밤에 눈이 조금 내렸음.--

    상왕이 서쪽에 순행하다 온천에 목욕니

    문안드리려는 임금 마음 날로 간절했네.

    새벽부터 금위군 이끌고 들판에 달려오니

    저물녘까지 음식 장만에 강가가 가득하네.

    삼경에 조금 뿌리 눈 그 소리 차가웠으나

    저 많은 부엌 연기들 따신 기운 보태주네.

    이 곳에서 일찍이 사냥 행차 모셨는데

    오늘이 그때보다 나음을 그 누가 알랴?

    *낱말

    행주行廚 : 행차할 때 음식을 장만하는 임시 주방廚房임.

    *작자소개

    권근 [權近, 1352~1409] 본관 안동. 자 가원(可遠) ·사숙(思叔). 호 양촌(陽村). 시호 문충(文忠). 초명 진(晋). 1367년(공민왕 16,정미, 16세) 성균시(成均試)를 거쳐 이듬해 문과에 급제, 춘추관 검열이 되고, 우왕(禑王) 때 예문관응교(藝文館應敎)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를 거쳐, 성균관 대사성 ·예의판서(禮儀判書) 등을 역임하였다. 창왕(昌王) 때 좌대언(左代言) ·지신사(知申事)를 거쳐 밀직사첨서사(密直司僉書事)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375년(우왕 1, 을묘, 24세) 박상충(朴尙衷) ·정도전(鄭道傳) ·정몽주(鄭夢周)와 같이 친명정책(親明政策)을 주장하여 원나라 사절의 영접을 반대하였고, 1389년(창왕 1, 기사, 38세) 윤승순(尹承順)의 부사(副使)로서 명나라에 다녀올 때 가져온 예부(禮部)의 자문(咨文)이 화근이 되어 우봉(牛峯)에 유배되었다가 영해(寧海) ·흥해(興海) ·김해(金海) 등지로 이배(移配)되었다. 1390년(공양왕 2, 경오, 39세) 이초(彛初)의 옥(獄)에 연루되어 또 다시 청주(淸州)에 옮겨졌다가 풀려났다.

    조선이 개국되자 1393년(태조 2, 계유, 42세) 예문춘추관학사(藝文春秋館學士) ·대사성 ·중추원사(中樞院使) 등을 역임하고, 1396년(태조5년, 병자, 45세) 표전문제(表箋問題)가 일어나자 자청하여 명나라에 들어가 두 나라의 관계를 호전시켰으나, 정도전 일파의 시기로 불안한 위치에 있게 되었다. 1398(태조 7년, 무인. 47세)년 정도전 일파가 숙청되자, 정당문학(政堂文學) ·문하부참찬사(文下府參贊事)를 거쳐 대사헌을 지내고, 사병(私兵)의 폐지를 주장하여 왕권확립에 큰 공을 세웠다. 1401년(태종 1, 신사, 50세)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으로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예문관 대제학이 되었고, 대사성 ·의정부찬성사(議政府贊成事)를 거쳐 세자좌빈객(世子左賓客) ·이사(貳師) 등을 역임하였고, 왕명으로 《동국사략(東國史略)》을 편찬하였다.

    문장에 뛰어났으며, 경학(經學)에도 밝아 사서오경(四書五經)의 구결(口訣)을 정하였다. 또한 그의 《입학도설(入學圖說)》은 후일 이황(李滉) ·장현광(張顯光) 등에게 크게 영향을 끼쳤다. 그는 성리학자이면서도 문학을 존중하였고, 시부사장(詩賦詞章)의 학을 실용면에서 중시하여 이를 장려하였으며, 경학(經學)과 문학(文學)의 양면을 조화시켰다. 문집 《양촌집(陽村集)》 외에 저서 《오경천견록(五經淺見錄)》 《사서오경구결(四書五經口訣)》 《동현사략(東賢事略)》이 있고, 작품에 <상대별곡(霜臺別曲)>이 있다.

by rkdmsaus | 2009/11/18 20:02 | 고인들의 시화 | 트랙백 | 덧글(0)

잠시쉬어가기-가을의 멋

                                            汨羅江提供寫眞

                                     


秋日勝春 : 가을이 봄보다 좋다


                   作者 : 유우석劉禹錫   
                   飜譯 : 조면희趙冕熙
 


自古逢秋悲寂寥 : 예로부터 가을은 슬프고 쓸쓸하다고 하는데

我言秋日勝春朝 : 나는 가을 날씨가 봄날보다 낫다고 하고싶다.

晴空一鶴排雲上 : 깨끗한 공중에 학 한 마리  구름 위에 올라가

便引詩情到碧 : 시정을 끌어다 높은 하늘에 알리기 때문일세
.

        
      

by rkdmsaus | 2009/11/12 03:07 | 쉬어가기 | 트랙백 | 덧글(0)

(167)도은이숭인선생시집陶隱先生詩 12 수

        도은선생시집陶隱先生詩 12 수


                                저자 : 도은 이숭인陶隱 李崇仁

                                번역 : 청계 조면희淸溪 趙冕熙

                                    출전 : <도은선생시집陶隱先生詩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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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一) 大駕南狩

    辛丑 仲冬大駕南狩 十五歲作


    白日村居遠。丹心魏闕懸。

    縱橫胡氣亂。聲息羽書傳。

    鍾鼎多銘刻。干戈幾歲年。

    松都根本地。會見凱謌旋。


    *해설 : 임금의 행차가 남쪽에 순행함

    신축년(1361년, 공민 10년. 홍건적 침입으로 왕이 피난 감) 동짓달에 임금의 어가가 남쪽에 순수함. 15세 때 지음.


    임금의 총명이 밝은 때 시골에 살지만

    임금 향한 충성심은 궁궐로 달려가네.


    오랑캐의 기세가 함부로 날뛰니

    적을 토벌하는 소식만 전해오네.


    종과 솥에 공신들의 기록은 많으나

    그들은 전쟁을 몇 해나 참가했는가?


    송도는 우리 나라의 근본 되는 곳

    마침내 개선가 부르며 돌아오겠지.


    (二) 丁未元朝


    歲次無停畢。人情易嘆吁。

    椒盤聞古頌。桃板覔新符。

    日照窮陰破。風吹萬態敷。

    頭顱還似舊。祗得飮屠蘇。


    *해설 : 정미년(1367년 공민 16. 작자 21세) 설날


    흐르는 세월 멈춤도 끝도 없는데

    사람들은 쉽게 흘러감을 한탄하네.


    산초 넣은 술에 옛날 노래 듣고

    복숭아 판자에 새해 부적을 쓰네.


    햇볕은 오래된 겨울 추위를 쫓고

    바람은 만 가지 형상을 펴 주지.


    머리 모양은 아직 예나 같지만

    그저 설날 도소주 얻어 마시네.


    *낱말

    1.초반椒盤 : 산초를 담은 쟁반. 옛날 정월 초하룻날에 소반에 산초를 놓았다가 술을 마실 때 그 산초를 술에 넣어서 마셨다. 당나라 두보杜甫의 <수세시守歲詩>에 :“守歲阿戎家, 椒盤已頌花.아융의 집에서 섣달 그믐밤을 새우는데 이미 산초 꽃을 찬양하는 노래와 함께 산초 쟁반이 나왔네.” 하여 산초는 설날 아침에 먹는 향초임.


    2.도부桃符 : 전해 오는 이야기에 신도神荼와 율루鬱壘 두 귀신이 백가지 마귀를 쫓아낼 수 있으므로 새해 아침에 문 곁에다가 두 개의 복숭아 나무 판자를 세우고 그 위에 두 귀신의 이름이나 혹은 모양을 그려 놓으면 마귀가 도망간다고 함. 출전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3. 궁음窮陰 : 한 해와 함께 겨울이 끝나는 때를 가리킴.


    4.두로頭顱 : (1).두로頭盧라고도 하며 해골[骷髏]을 뜻함. (2) 기억력이나 정신등을 가리키는 뇌대腦袋.


    5.도소屠蘇 : (1). 풀 이름 (2) .도수屠酥라고도 하며 약주 이름. 옛날에 이 술을 설날에 먹는 풍습이 있음.


    (三) 嘉禮

    丁未十月二十九日。扈駕康安殿。是日嘉禮。

    后妃美化被周南。千載依然見葛覃。

    盛代卽今開盛禮。小臣稽首祝多男。


    *해설 : 혼인의식
    정미년(1367. 공민16, 작자 21세) 10월 29일 강안전에서 임금을 모심. 이
    날 가례(嘉禮 : 공민왕의 後妃와의 혼인인듯)를 행함.


    왕후 비빈이 훌륭히 됨은 <시경>의 주남장의 힘

    천년 동안 똑 같이 <시경>의 갈담장에 나타났지.


    훌륭한 시대인 오늘 날 훌륭한 의식을 행하니

    하찮은 이 신하 머리 조아려 다남하기를 비네.


    (四) 短篇

    辛亥 冬夜。陪土亭先生飮。連倒十數盃。大醉。土亭呼韻使賦短篇。


    君不見

    隆中長嘯一布衣。歲晚龍翔扶漢基。

    又不見

    陶隱之齋醉書生。四壁蕭索猶橫經。

    丈夫出處未易議。肉眼紛紛徒爾耳。

    酒酣仰天聲嗚嗚。彼老蒼兮眞虗無。

    出門一笑知者誰。先生本自同襟期。


    *해설 : 단편

    신해년(공민왕 20년, 1371년, 작자 25세) 겨울밤에 토정선생을 모시고 술을 마시었는데 열두어 잔을 연하여 마시고 크게 취하여 토정이 운을 부르면서 나에게 단편 시를 짓게 하였다.


    그대는 보지 않았는가?

    융중에서 휘파람 불며 살아가던 선비 제갈량이

    시기 늦게 용처럼 날아 한나라 기틀 붙든 것을.


    또 보지 않았는가?

    도은의 서재에서 술 취한 서생인 내가

    벽마다 쓸쓸히 경서만 쌓여 있는 것을.


    대장부의 출세와 은둔은 함부로 못 따지지만

    공연히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


    술 취하면 하늘을 향해 중얼중얼 불평하기를

    저 늙은 친구 참으로 너무 허무하기만 하다고.


    우습다, 문에 나가면 누가 알아준단 말가?

    토정선생만 본래 취미가 나와 같은 것을


    *노창老蒼 : 늙은이를 뜻하는 말. 여기서는 하늘을 의인화해서 가리킴.


    (
    五) 除夜

    辛亥除夜。呈席上諸公。 二首


    <一>

    落落已違世。悠悠仍感時。

    餘年付羲易。卽事讀坡詩。

    坐久燈花落。看來斗柄移。

    男兒心有在。除子更誰知。


    *해설 : 섣달그믐밤
    신해년(1371년, 공민 20년, 25세) 섣달그믐 밤에 함께 자리한 여러 사람들에게 바침. 두 수


    남과 동떨어져서 이미 세상과 어긋났는데

    끝없는 생각 그대로 시간의 흐름을 느끼네.


    남은 세월은 복희씨의 주역에 붙여놓고

    사물의 느낌은 소동파의 시나 읽으려네.


    오래 앉아 있으니 등불 심지 타서 떨어지고

    하늘을 쳐다보니 북두성의 자루가 옮겨갔네.


    남자의 마음 두어야 할 곳 있는데

    그믐밤의 한계를 누가 어찌 알까?


    <二>

    邂逅成佳會。都爲少壯時。

    風流東晉俗。瀟灑盛唐詩。

    世事正紛糾。交情無改移。

    殷勤惜白日。愼勿負相知。


    모처럼 만나 아름다운 모임 만들으니

    모두 젊고 한창 때를 위한 자리일세.


    멋스러운 놀이는 동진 때 죽림 풍속이고

    고아한 멋은 성당 때 시인들의 기풍이지.


    세상일들은 정히 얽히고설키었으나

    사귀는 정은 결코 바꿔지지 않았네.


    은근히 시간 가는 것을 아끼노니

    서로 친한 교분을 저버리지 말세.


    (六) 呈三峯

    癸丑三月初六日有雪。呈三峯。


    二月到三月。雨雪也頻頻。

    未放重裘解。仍須綠酒親。

    乾坤且氛祲。草木謾精神。

    排悶新詩句。携將寄故人。


    *해설 : 삼봉에게 드림

    계축년(1373년. 공민 22, 작자 27세) 3월 초 6일에 눈이 와서 삼봉에게 드림.


    이월 달에서 삼월까지

    눈이 자주도 내렸다네.


    아직 두터운 갖옷 못 벗고

    그냥 술 마시는 일만 잦네.


    하늘과 땅은 요상한 기운이고

    풀과 나무는 봄정신을 속이네.


    답답함 물리치려 새 시 지어

    옛 친구에게 부치어 보내네.


    (七) 應敎作

    癸丑十月初八日。扈駕西江卽事。應敎作。


    駐蹕平皐炁像新。非煙非霧靄江津。

    擬將献賦才華薄。誰道詞垣得箇人。


    *해설 : 임근의 명령에 응하여 지음

    계축년(1373년. 공민22, 작자 27세) 10월 초8일. 임금을 모시고 서강에 나갔다가 명령을 받고 그 자리에서 읊은 시.


    평평한 언덕에 어가가 멈추니 기상도 새로워져

    연기도 안개도 아닌 아지랑이 강나루에 끼었네.


    글을 지어 바치려고 노력하나 재주가 모자라니

    누가 시문을 맡은 곳에 알맞은 사람 있다 했나?


    (八) 霧

    癸丑閏十一月十四日霧


    久怪冬寒薄。今驚曉霧新。

    轉頭迷去路。擧目失比鄰。

    似雨難生物。如塵祗汚人。

    五侯封旣遠。三里術何神。

    爕理知誰責。薰蒸入鼻辛。

    吾身要自愛。且飮一盃醇。


    *해설 : 안개
    계축년(1373년, 공민22, 작자 27세) 윤동짓달 14일 안개 낌


    겨울 날씨 푸근한 것이 괴이하더니

    오늘은 새벽안개 놀랄만큼 끼었네.


    고개를 돌려보니 갈 길이 희미하고

    똑 바로 보아도 이웃집도 안 보이네.


    비와 같으나 물건이 자라기 어렵고

    티끌 같아서 사람을 더럽힐 듯하네.


    붉은 안개 끼게 한 다섯 제후 봉한 일은 먼 옛날

    삼리에 안개 끼게 한 도술,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자연에 순응하여 적응케 하는 일은 정승의 일인데

    어찌해 겨울에 더운 김이 올라와 코를 맵게 할까?


    내 몸 내가 아끼는 것이 중요한 일이니

    몸 위하여 한 잔의 술을 또한 마시려네.


    *낱말

    1.다섯 제후 봉한 일 : 후한後漢 성제成帝 때 황제의 외척이며 왕망王莽의 친척인 왕씨王氏가 정권을 잡아 그 친척에게 오후五侯를 봉하니, 그날에 누른 안개가 사면에 온종일 꽉 끼고 티끌이 옷을 더럽혔다고 함.


    2.삼리무三里霧 : 후한後漢 장해張楷는 도술道術을 좋아하여 5리 안개를 만들고, 같은 때의 배우裴優라는 사람은 3리 안개를 만들었다 함.


    (九) 赴京師

    丙寅十二月十六日赴京師。


    弧矢當年志四方。如今奉使幸觀光。

    江分鷰尾成天塹。山似龍蟠遶苑墻。

    金碧雲開尊象魏。綺羅風動照康莊。

    神京制度超前古。說與卿人語合長。


    *해설 : 중국 서울에 사신으로 감
    병인년(1386년. 우왕12. 작자 40세) 2월 16일 명나라 수도 남경南京에 사신으로 감.


    출생 때 쑥대 화살은 사방에 뜻을 두라는 뜻

    오늘날 다행스럽게도 사신으로 구경가게 됐네.


    강물은 제비 꼬리처럼 갈라져 남경을 둘러쌌고

    산맥은 용처럼 꿈틀꿈틀 궁궐의 성담 만들었네.


    오색구름 같은 궁문 열리자 궁궐이 솟아 있고,

    비단 휘장 바람에 펄럭이자 큰 길이 펼쳐졌네.


    중국 서울의 제도가 어느 시대보다 뛰어 났으니

    고향 사람에게 이야기해주려면 설명이 길어지리.


    (十) 蒙賜冠服

    (1388년?. )十七日早朝。上御奉天門。臣崇仁等蒙賜冠服。獲與朝官列拜午門之外。


    黃金闕角上初暾。踵武夔龍謁至尊。

    須信聖恩無內外。朱衣玉佩映端門。


    *해설 : 관복을 하사받고

    연대(1388년? : 작자가 두 번째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42세 때일 듯) 17일 아침에 황제가 봉천문에 나와 신하인 숭인등에게 관복을 내려주고 조관들과 함께 오문 밖에서 나열해 섰도록 허락 받음.


    황금 장식의 대궐 짐에 아침 해가 올라오자

    훌륭한 신하들이 줄지어 황제에게 배알하네.


    황제 은혜는 나라 안팎이 따로 없음을 알겠고,

    붉은 옷과 허리에 찬 옥들은 정남문에 비쳤네.


    (十一) 龍江驛開船


    畫船撾鼓發江關。正是朝正使者還。

    更向都門一回首。五雲飛繞紫金山。


    *해설 : 용강역에 배를 탐.


    그림 같은 배 북치며 강나루 출발하니

    이게 바로 조정사가 돌아오는 행차일세.


    다시 중국 도성 문을 향하여 돌아보니

    오색구름이 날아 자금산을 둘러싸 있네.


    *낱말

    1.용강역龍江驛 : 중국 명나라 초기의 수도인 남경 근처의 강나루. ‘명성조明成祖가 사절단에게 잔치를 베풀어주고 또 상도 하사하고는 또 명하기를 용강역龍江驛에서 각국의 사신들에게 잔치를 베풀어 전송하라고 하였음.


    2.자금산紫金山 : 중국 남경의 진산鎭山.

    3.조정사朝正使 : 조정사는 정월 원조에 황제에게 신년 인사를 하기 위해 보내는 사신


    (十二) 寄三峯隱者


    華山南望一髮微。山中幽居晝掩扉。

    渠心豈肯避世者。自是俗人來往稀。

    一自菩提心學傳。多少高士愛逃禪。

    菁莪豐芑久寂寞。空讀昌黎原道篇。


    *해설 : 삼봉은자에게 부침
    삼봉에 숨은 사람(정도전이 1391년 경 탄핵을 받아 고향인 봉화에 유배되었을 때일 듯)에게 보냄.


    은사가 사는 화산을 남쪽 아득히 바라보니

    산중에 숨어 살므로 낮에도 사립을 닫았네.


    그 마음에 세상을 피하고 싶어 그럴까마는,

    이로부터 속인들의 오가는일 드물어졌겠지.


    한번 보살로부터 마음으로 학문을 전해 받자

    많은 선비들 세상을 피해 참선을 사랑하였네.


    <시경>의 청아와 풍기가 오래도록 실행안돼

    공연히 박애를 주장한 한창려 원도편만 읽네.


    *낱말

    1.화산華山 : (1) 중국 오악 중의 하나. (2)삼각산의 별칭. (3)은자들이 숨어사는 산의 별칭. 여기서는 (3)의 뜻. 송(宋) 나라 때의 은사隱士 진단陳摶이 은거하던 곳인데, 그 당시 많은 은사들이 화산으로 진단을 찾아와 노닐곤 하였으므로, 전하여 높은 은사를 찾아가 노닐고 싶다는 뜻이다. <송사宋史>


    2.청아菁莪 : 인재 교육을 노래함. <시경詩經> 소아小雅 청청자아菁菁者莪


    3.풍기豐芑 : 선왕先王의 유업을 이어받아 자손에게 많은 복록을 전하는 일을 뜻한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문왕유성文王有聲


    *작자소개

    이숭인 [李崇仁, 1347~1392] : 본관 성주(星州). 자 자안(子安). 호 도은(陶隱). 삼은(三隱)의 한 사람이다. 공민왕 때 문과에 장원, 숙옹부승(肅雍府丞)이 되고 곧 장흥고사(長興庫使) 겸 진덕박사(進德博士)가 되었으며 명나라 과거시험에 응시할 문사(文士)를 뽑을 때 수석으로 뽑혔으나 나이가 25세에 미달하여 보내지 않았다.


    우왕 때 김구용(金九容)·정도전(鄭道傳) 등과 함께 북원(北元)의 사신을 돌려보낼 것을 주청하다가 한때 유배, 그후 밀직제학(密直提學)이 되어, 정당문학 정몽주(鄭夢周)와 함께 실록(實錄)을 편수하고 동지사사(同知司事)에 전임하였으나 친명(親明)·친원(親元) 양쪽의 모함을 받으며 여러 옥사(獄事)를 겪었다.


    1386년(우왕 12)에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후 이인임의 인족(姻族)이라 하여 유배되기도 하였다. 1389년 창왕 때에도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후에도 혼란기를 맞아 유배·감금되었고, 1392년(공양왕 4) 이방원에게 정몽주가 살해되자 그의 일당으로 몰려 유배되었다.


    조선이 개국할 때 정도전의 원한을 사서 그의 심복 황거정(黃巨正)에게 살해되었다. 문장이 전아(典雅)하여 중국의 명사들도 탄복하였다. 저서에 《도은집(陶隱集)》이 있다.

                       ---인물 소개 인터넷에서 인용--

    by rkdmsaus | 2009/11/08 08:31 | 고인들의 시화 | 트랙백(1) | 덧글(1)

    잠시 쉬어가기-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황후

                                       汨羅江詩人 提供 寫眞

                        ---요르단 국왕 압둘라의 왕후 라니아--

    世上最美麗的皇后


    世界上最美麗的皇后



      中東王室財源滾滾,摁住了大油田,就扼住了世界經濟的命脈。阿拉伯世界往往是男人當家,女人再俊美,也要罩在嚴實的黑紗後面,

     

    所有的生機,就是那黑紗縫隙里,一對水汪汪的大眼珠。如果說這是風俗的話,有位特立獨行的美女,改變了世界對阿拉伯女性的種種成見。

     

    她被譽為世界上最美麗、最優雅的王后,她就是約旦王國現任國王阿卜杜拉的王后——拉尼婭。

      



      這位美貌絕倫的約旦王后,皮膚光潔細膩,五官輪廓分明。有趣的是,王后和其他阿拉伯女子的氣質完全不同,

     

    她喜歡穿著牛仔褲、牛仔短褲、高跟鞋,披散一頭極富光澤的棕色秀發,經常面帶微笑。

      



      她表現出穆斯林婦女現代化的一面,徹底顛覆了西方人的種種偏見。拉尼婭,曾被美國《時代》周刊、意大利《時尚和娛樂》等知名雜志當做封面人物。

     

    甚至有西方媒體將她與杰奎琳肯尼迪、戴安娜相提並論。更有甚者,干脆將她稱為阿拉伯世界的戴安娜

      盡管約旦是中東地區的小國,9萬平方公里,人口不足600萬;但是,王儲要想自由戀愛、最終娶個心上人做王后,也沒那麼簡單。

     

    應該說,阿卜杜拉和拉尼婭的婚姻,像一段浪漫傳奇,頗具戲劇性。

      



      1970年,拉尼婭出生于巴勒斯坦裔的醫生家庭,從小長在科威特。別看她天生麗質,卻不像一般女孩兒那樣,做離奇的明星夢。

     

    她很現實,願意踏踏實實讀書,接受系統的高等教育,將來當一名管理或政治經濟理論方面的專家。

      



     拉尼婭先就讀于科威特國際學校,能講一口非常流利的英語。此後,又入美利堅大學開羅分校,攻讀工商管理專業。

     

     1991年海灣戰爭後,拉尼婭畢業,隻身赴約旦首都安曼,先在第一花旗銀行分行進修,後來跳槽,進了隻果公司工作。

     


      



      1993 1月,拉尼婭忽然交上桃花運了。一場偶然的晚宴,徹底改變了她的人生軌跡。

     

    晚宴上,拉尼婭結識了牛津大學的高材生阿卜杜拉。當時,她並不知道這個年長的小伙子,正是約旦王子。

     

    即便摸著底細,也無所謂,約旦國王有一群兒子呢,阿卜杜拉並不是王儲。所以,拉尼婭做夢都想不到,自己能成為將來的約旦王后。

      



      剛開始,阿卜杜拉並不受寵。他父母才離婚不久,王儲大位早就落在了叔叔頭上。在這種情況下,阿卜杜拉可以自由自在地戀愛。

     

    很難想象,他的意中人居然是個普通百姓,而且來自巴勒斯坦的家庭。好在約旦王子,並沒有陷入權力漩渦,有的是精力追求拉尼婭。

      



      據說,當阿卜杜拉把未婚妻帶到父親跟前時,老國王侯賽因也對兒媳婦的美貌贊嘆不已。

     

    僅僅5個月,他們的戀情便修成正果了。1993610日,22歲的拉尼婭和阿卜杜拉王子,手牽手,走上了紅地毯。

     

    還有個鮮為人知的細節呢,豪華慶典開始,要給新王妃加冕了,可是沒準備好瓖嵌鑽石的王冠,只好從外邊借一頂鑽石王冠來救急。
      



      拉尼婭像做夢一樣做了約旦王妃,卻預料不到有朝一日會榮登王后。命運偏偏開了個大玩笑,忽然把人推向風口浪尖,這很像中國古人所說的富貴迫人來

     

    約旦老國王侯賽因,眼看就不行了,彌留之際,他陡然回心轉意,臨時把王位傳給了兒子——阿卜杜拉。

     

    于是,拉尼婭王妃順理成章地榮登第一夫人”——約旦哈希姆王國王后。這位年輕女子,立刻捲入輿論中心,常人覬覦的大富大貴,讓她感覺很沉重。

      



      王后的確不好當。畢竟,養尊處優、吃喝玩樂,不是拉尼婭的性格,她接受過系統的西方教育,而且來自于民間,有足夠的能力為國家做點兒什麼。

     

    婚後,拉尼婭請求丈夫允許︰絕不充當阿卜杜拉身邊的花瓶,她希望積極參與各種社會事務。

      



      中東王室也得顧忌穆斯林法規,女人在阿拉伯世界拋頭露面,需要排除很多障礙。

     

    阿卜杜拉打開了擦邊球︰在王宮里建了一座約旦基金會事務所,拉尼婭可以坐主後宮,統籌基金會,促進國內的婦女工作。

     

    除了創辦企業,增加就業之外,拉尼婭還成立了一家援助受虐待兒童的專門機構,並親自擔任兒童權利的辯護人。

      



      盡管拉尼婭是典型的現代派,她熱衷于新鮮事物,第一個把互聯網教育引進中東。

     

    此外,她為女性在議會和內閣中爭取座位,甚至和其他王室女性,出現在抗議以色列軍事行動的游行隊伍里……這些驚世駭俗的行動激怒了一些保守派,

     

    2002年一場足球賽上,居然有人朝阿卜杜拉國王叫嚷︰休了她!休了她!休了誰呀?讓國王罷黜王后嗎?疏不間親,這不是開玩笑嗎。

     

    阿卜杜拉國王才捨不得呢。

      目前,阿卜杜拉夫婦有四名子女,外界看來,年屆四十的拉尼婭,依舊光彩照人,風度翩翩。

     

    在各種公開場合,她華麗的服飾、優美的身材、迷人的微笑,令所有來賓傾倒。拉尼婭都堪稱現代女性的典範。

     

    多年來她為了維護婦女兒童權益,八方奔走。積德行善,造福一方,自然更具人格魅力。所謂世界上最美麗、最優雅的王後,絕不僅靠一張俊俏的臉蛋兒吧。


    by rkdmsaus | 2009/11/04 11:53 | 쉬어가기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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