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9 . 조면희 당시감상 이상은李商隱편 한비韓碑4. 당시삼백수감상

269 . 조면희 당시감상 이상은李商隱편 한비韓碑4.

. 조면희 <당시삼백수> 고시편

(). 칠언고시七言古詩 중에서

 

9-4. 한비韓碑

작자 : 이상은李商隱. 번역 : 청계 조면희

 

3. 비문을 쓰게 된 동기

 

제왈여도공제일여종사유의위사

帝曰汝度功第一汝從事愈宜為辭

 

유배계수도차무금석각화신능위

愈拜稽首蹈且舞金石刻畫臣能為

 

고자세칭대수필차사불계어직사

古者世稱大手筆此事不係於職司

 

당인자고유불양언흘루함천자이

當仁自古有不讓言訖屢頷天子頤

 

황제는 배도의 공이 제일크다 하고,

종사관인 한유에게 글을 짓게 했네.

 

한유는 고개 숙여 절하고 기뻐하며,

비석에 새길 글을 신이 짓겠습니다.

 

옛 같으면 문장가가 맡을 일이지만,

이 일은 직책에 연관이 없사옵니다.

 

훌륭한 일을 하는 데 앞장서렵니다.

그 말에 천자께서 고개를 끄덕였지.

 

 

*감상

내용 : 회서적이 평정되자 황제께서 배도의 공이 제일 크다고 하고 적을 소탕한 전말을 한유에게 쓰라고 하니 한유는 이런 큰 일은 굳이 대문장가나 문필을 맡은 직책의 우두머리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하며 그 일을 맡았다.

형식 : 역시 상평성 4를 압운한 48구의 한 단락을 만들고 있음.

 

*작자소게

이상은(李商隱 813858),자는 의산義山호는 옥계생玉谿生만당시인晚唐詩人시의 문학가치 매우 높아서 두목杜牧과 함께 소이두小李杜로 일컬으며 온정균溫庭筠과 함께 온이溫李로 일컬어짐. <당시 삼백수>중에 24수 실려 있음.

                                      

<백련초해百聯抄解> 중에서 (十一) 百聯抄解

<백련초해百聯抄解> 중에서 (十一)


옮겨 쓴이 : 청계 조면희


백련초해百聯抄解 : 조선朝鮮 명종明宗 때, 김인후가 칠언한시七言漢詩 가운데 대對가 잘 이루어진 연구(聯句ㆍ連句) 곧 대련對聯이 잘된 구절 백련百聯을 뽑아 한글로 옮겨 펴낸 책冊.

본인은 여기서 대구對句 2련聯씩 초서로 옮기고 원문을 간단히 본인 방식으로 해설을 붙여 함께 올립니다.


<十一>.

 



山影入門推不出, 月光鋪地掃還生.

更深嶺外靑猿嘯, 煙淡沙頭白鷺眠.


산그림자 문안에 드니 밀어낼수 없고,

달빛 땅에 깔리니 쓸어도 쓸리지않네.


깊은밤 고개 너머엔 원숭이 울부짖고,

물안개 깔린 모래톱위에 백로 잠자네.




268 . 조면희 당시감상 이상은李商隱편 한비韓碑3. 당시삼백수감상

268 . 조면희 당시감상 이상은李商隱편 한비韓碑3.

. 조면희 <당시삼백수> 고시편

(). 칠언고시七言古詩 중에서

 

9-3. 한비韓碑

작자 : 이상은李商隱. 번역 : 청계 조면희

 

2. 명제상 배도를 시켜 적을 평정함

 

제득성상상왈도적작불사신부지

帝得聖相相曰度賊斫不死神扶持

 

요현상인작도통음풍참담천왕기

腰懸相印作都統陰風慘澹天王旗

 

소무고통작아조의조외랑재필수

愬武古通作牙爪儀曹外郎載筆隨

 

행군사마지차용십사만중유호비

行軍司馬智且勇十四萬眾猶虎貔

 

입채박적헌태묘공무여양은불자

入蔡縛賊獻太廟功無與讓恩不訾

 

2. 명제상 배도를 시켜 적을 평정함

 

황제가 임명한 훌륭한 재상 배도는,

신의 도움으로 적의 암살 모면했네.

 

정승에 임명하고 도통장군 맡기니,

황제깃발 앞세우고 토벌하러 갔네.

 

이소 한무 이도고 이문통이 장수고,

예조 문관이 기록관으로 따라 갔네.

 

인솔 장교들은 지혜롭고 용감했고,

십사만명 병사들은 범과 곰 같았네.

 

회서의 괴수 생포해 태묘에 바치니,

그공에 황제께서 은혜 크게 내렸네.

 

 

*감상

1.내용 : 황제는 배도를 정승으로 삼고 14만 군대를 통솔하라는 도통의 인장을 하사한 뒤에 적을 평정하게 하니 배도의 선봉장인 소무등이 적장 오원제를 사로잡아 태묘에 바치고 적을 평정하였다.

2.형식 : 역시 상평성 4 를 압운한 전부 510 구의 칠언 고시임.

*작자소게

이상은(李商隱 813858),자는 의산義山호는 옥계생玉谿生만당시인晚唐詩人시의 문학가치 매우 높아서 두목杜牧과 함께 소이두小李杜로 일컬으며 온정균溫庭筠과 함께 온이溫李로 일컬어짐. <당시 삼백수>중에 24수 실려 있음.

 

                                      

근하신년謹賀新年 쉬어가기


근하신년謹賀新年


작성자 청계 조면희

삼가 새해에 축하 인사 드립니다 

   

  

금저대자래. 황구기선최.

金猪帶子來. 黃狗氣先摧.

 

매보신춘발, 가가하복퇴.

梅報新春發, 家家賀福堆.

 

삼가 새해 맞이를 축하함

 

금돼지 새끼들을 몰고 나오니,

누렁이 기운부터 꺾여 버렸네.

 

매화가 새봄 알리며 피어나니,

집집마다 축화와 복이 쌓이네.




사실은 새해를 알리는 첫번째 태양이 남쪽회귀선에서 돌아오는 날 동지冬至의 뜻


1. 동지는 겨울이 이르렀다는  뜻이 아니고 겨울이 절정의 지경에 이르러 끝나간다는 뜻입니다

.

2. 동지는  동양철학인 주역의 64효 중에 순음의 곤坤 괘에서 음효陰爻 6개 중 맨 밑의 한 자리를 양효陽爻에게 양보하여 양기가 처음으로 생겨난다고 하여 일양이 처음 생겨나는 날로 옛날에는 설 보다 더 중요한 명절로 인정하였음

.                                  

  3. 동지 성절사는 동지 곧 새해를 축하는 사신이었음.


황금돼지해의 뜻

6십 갑자중 십간十干은 오행五行설에 따라 오방색으로 나눈는데 갑을甲乙은 동쪽으로 청색靑色에 속하고 병정丙丁은 남쪽으로 붉은 적색에 속하고, 무기戊己는 중앙으로 누른 황색에 속하고, 경신庚辛은 서쪽으로 하얀색인 백색에 속하고, 임계壬癸는 북쪽으로 검은 색인 흑색에 속합니다. 그래서 다가 오는 해는 기해己亥 년이므로 황금돼지해입니다.  



267 . 조면희 당시감상 이상은李商隱편 한비韓碑2. 당시삼백수감상

267 . 조면희 당시감상 이상은李商隱편 한비韓碑2.

. 조면희 <당시삼백수> 고시편

(). 칠언고시七言古詩 중에서

 

9-2. 한비韓碑

작자 : 이상은李商隱. 번역 : 청계 조면희

 

1. 회서 도적의 기세

 

원화천자신무자피하인재헌여희

元和天子神武姿彼何人哉軒與羲

 

서장상설렬성치좌법궁중조사이

誓將上雪列聖恥坐法宮中朝四夷

 

회서유적오십재봉랑생추추생비

淮西有賊五十載封狼生貙貙生羆

 

불거산하거평지장과리모일가휘

不據山河據平地長戈利矛日可麾

 

*한유의 <평회서비>를 찬양함9-2

 

1. 회서 도적의 기세

 

헌종황제는 신성하고 씩씩한 자질로

고대제왕인 헌원씨와 복희씨 같았네.

 

맹세코 선대 제왕들의 치욕을 씻고,

궁궐에서 오랑캐들 조회 받으려했네.

 

회서지방에 오십년 간 터잡은 반적,

이리에서 범과 곰으로 바뀌어 졌네.

 

산과 물을 벗어나 평지에 근거두고,

창칼에 날세워 황제 위세에 맞섰네.


*감상

내용 : 헌종의 훌륭한 자질은 사방 변경을 통치하고 특히 채주蔡州인 회서지방에서 창궐하는 반적을 정복할 계획을 세웠다.

형식 : 도입부가 전부 8구로 된 칠언고시형태로 첫 구절의 희자를 비롯하여 각 짝수 끝 자가 전부 상평성 4 운으로 구성되어 있음.

*작자소게

이상은(李商隱 813858),자는 의산義山호는 옥계생玉谿生만당시인晚唐詩人시의 문학가치 매우 높아서 두목杜牧과 함께 소이두小李杜로 일컬으며 온정균溫庭筠과 함께 온이溫李로 일컬어짐. <당시 삼백수>중에 24수 실려 있음.


백련초해百聯抄解 중에서 (十) 百聯抄解


<백련초해百聯抄解> 중에서 ()

옮겨 쓴이 : 청계 조면희

 

백련초해百聯抄解 : 조선朝鮮 명종明宗 , 김인후가 칠언한시七言漢詩 가운데 대가 잘 이루어진 연구(聯句連句) 곧 대련對聯이 잘된 구절 백련百聯을 뽑아 한글로 옮겨 펴낸 책.

 

본인은 여기서 대구對句 2씩 초서로 옮기고 원문을 간단히 본인 방식으로 해설을 붙여 함께 올립니다.





<>.

 

죽순초생황독각, 궐아이작소아권.

竹筍初生黃犢角, 蕨芽已作小兒拳.

 

죽아사필난성자, 송엽여침미관사.

竹芽似筆難成字, 松葉如針未貫絲.

 

대 순이 처음 솟으니 황송아지 뿔같고,

고사리 싹 자라니 아기의 주먹 같구나.

 

대 싹은 붓과 같아도 글씨 쓰기어렵고,

솔잎은 바늘 같지만 실을 꿰지 못하지.


266 . 조면희 당시감상 이상은李商隱편 한비韓碑1. 당시삼백수감상

266 . 조면희 당시감상 이상은李商隱편 한비韓碑1.

. 조면희 <당시삼백수> 고시편

(). 칠언고시七言古詩 중에서

 

9-1. 한비韓碑

작자 : 이상은李商隱. 번역 : 청계 조면희

 

1. 회서 도적의 기세

 

원화천자신무자피하인재헌여희

元和天子神武姿彼何人哉軒與羲

서장상설렬성치좌법궁중조사이

誓將上雪列聖恥坐法宮中朝四夷

회서유적오십재봉랑생추추생비

淮西有賊五十載封狼生貙貙生羆

불거산하거평지장과리모일가휘

不據山河據平地長戈利矛日可麾

 

2. 명제상 배도를 시켜 적을 평정함

 

제득성상상왈도적작불사신부지

帝得聖相相曰度賊斫不死神扶持

요현상인작도통음풍참담천왕기

腰懸相印作都統陰風慘澹天王旗

소무고통작아조의조외랑재필수

愬武古通作牙爪儀曹外郎載筆隨

행군사마지차용십사만중유호비

行軍司馬智且勇十四萬眾猶虎貔

입채박적헌태묘공무여양은불자

入蔡縛賊獻太廟功無與讓恩不訾

 

3. 비문을 쓰게 된 동기

 

제왈여도공제일여종사유의위사

帝曰汝度功第一汝從事愈宜為辭

유배계수도차무금석각화신능위

愈拜稽首蹈且舞金石刻畫臣能為

고자세칭대수필차사불계어직사

古者世稱大手筆此事不係於職司

당인자고유불양언흘루함천자이

當仁自古有不讓言訖屢頷天子頤

 

4. 한유가 비문을 지어 비를 세우는 과정.

 

공퇴재계좌소각유염대필하림리

公退齋戒坐小閣濡染大筆何淋漓

점찬요전순전자도개청묘생민시

點竄堯典舜典字塗改清廟生民詩

문성파체서재지청신재배포단지

文成破體書在紙清晨再拜鋪丹墀

표왈신유매사상영신성공서지비

表曰臣愈昧死上詠神聖功書之碑

비고삼장자여두부이령오반이리

碑高三丈字如斗負以靈鼇蟠以螭

 

5. 비석의 파괴와 비문의 전승.

 

句奇語重喻者少讒之天子言其私

장승백척예비도추사대석상마치

長繩百尺拽碑倒麤沙大石相磨治

공지사문약원기선시이입인간비

公之斯文若元氣先時已入人肝脾

탕반공정유술작금무기기존기사

湯盤孔鼎有述作今無其器存其辭

 

6. 한유의 비문이 후세에 끼칠 의의.

 

오호성왕급성상상여훤혁류순희

嗚呼聖王及聖相相與烜赫流淳熙

공지사문불시후갈여삼오상반추

公之斯文不示後曷與三五相攀追

원서만본송만편구각류말우수지

願書萬本誦萬遍口角流沫右手胝

전지칠십유이대이위봉선옥검명당기

傳之七十有二代以為封禪玉檢明堂基

 

 

*감상

1. 내용 : 당나라 헌종(817)은 타고난 훌륭한 바탕이 중국 상고시대 헌원씨나 복희씨에 견줄 만하여 선왕시대 사방국경지방으로부터 받은 치욕을 풀려고 했다.

 

이리하여 궁중에 앉아 사방 오랑캐들로부터 하례를 받으려고 하였는데 그 중에 회서淮西 지방 반군들은 지난 오십년 동안 조공을 하지 않을 뿐아니라 점점 흉포해져서 이제는 산악지대를 벗어나 살기 좋은 평지를 차지하고 무력을 길러 정부 요인들까지 암살하려 하였다 이때 배도裴度도 암살당할 뻔하였으나 미수에 그치니 황제는 배도를 정승으로 앉히고 반군을 평정하라는 총 책임자로 임명하였다.

이때 배도는 이소李愬, 한공무韓公武, 이도고李道古, 이문통李文通등을 선봉장으로 삼고 행군사마인 한유韓愈를 행군사마로 삼았는데 이 전쟁에 14만 명의 군대가 나갔다. 그리하여 이소를 비롯한 선봉장이 희서지방인 채주蔡州를 평정한 후 반적 오원제吳元濟를 사로잡아 태묘에 제사 드렸다.

 

그 뒤 헌종은 배도의 공적이 가장 크니 수행관인 한유가 승전사실을 지어 비석을 세워라하였다. 그리하여 한유는 겸손한 말로 비록 조정에 큰 문장가가 많이 있지만 이 일만은 자신이 참가한 일이니 자신이 쓰겠다고 하고 <서경>에 요전堯典ㆍ순전舜典<시경>의 청묘淸廟ㆍ생민生民 장을 참고하여 비문을 지은 뒤에 돌비에 새겼는데 큰 글자로 세[3] 길 높이의 비석에 새기고 그 비석을 자라 등에 얹었으며 비석 둘레에 용무늬를 새겨 놓았다.

 

그 뒤 헌종의 사촌 누이 남편인 이소가 비문 내용에 불만을 품고 자기 아내를 시켜 황제에게 참소하여 한유의 글이 공평하지 못하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황제의 명령으로 비석을 끌어내려 돌과 모래로 비문을 갈아버리고 한림학사 단무창段文昌으로 하여금 비문을 지어 새로 비석을 세웠는데 이것이 단비段碑이다.

 

그러나 한공의 문장은 천지의 기운을 받아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글로 전해 오니 이는 마치 고대 그릇에 새겨진 탕반湯盤이나 공정孔鼎의 글과 같이 그 그릇은 사라졌어도 그 내용은 지금까지 전해 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유의 비문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도 하였다.

 

그리고 이와 같이 한유의 문장이 사라진다면 헌종의 삼황오제에 필적하는 업적도 사라지고 말 터이니 이 문장은 삼황오제 때 일흔 두 대의 공업을 태산에 봉선封禪하는 옥첩[玉檢]의 기반이 된 것과 같이 될 것이라고 하고 끝을 맺음.

 

2. 형식 : 상평성 4 를 압운으로 쓴 총 26 52구로 된 7언고시로 끝구가 두 자 더 많음.

 

*낱말

1. 원화元和헌종연호憲宗年號

2. 법궁法宫군왕 집무실 곧 궁전의 정전正殿

3. 사이四夷사방 국경지방의 오랑캐

4. 회서淮西채주蔡州 지방을 가리킴.

5. 일가휘日可麾반군의 작란

6. 당시 정승인 배도裴度

7. 도통都统군대의 총책임자

8. 천왕기天王旗황제의 의장기

9. 호비虎貔맹수

10. 반장 오원제吳元濟

11. 파체破體옛날 문체서 벗어남을 뜻함.

12. 단지丹墀궁궐의 붉은 색 계단.

13. 매사昧死겸손한 말로 죽음을 무릅쓰고의 뜻.

14. 영오靈鰲비석 받침대로 큰 자라와 같은 모양

15. 반이리蟠以螭비석돌에 빙둘러 싼 용무늬.

16 마치磨治비문을 갈아 없앰.

17. 원기元氣없앨 수 없는 바른 기운.

18. 탕반湯盤상탕商湯이 목욕하던 그릇. 경계하는 내용이 새겨져 있었음.

19. 공정孔鼎공자孔子의 선조인 정고부正考夫가 썼던 솥여기에도 글씨가 새겨져 있었음.

20. 순희淳熙선명함 광택光澤

21. 굳은 살이 박힘.

22. 명당기明堂基명당의 주춧돌

23. 도차무蹈且舞 : 도무蹈舞는 신하가 경하할 때 황제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식의 한 가지이다.

24. 대수필大手筆 : 문장을 잘 쓰는 사람. <진서晉書> 왕순전王珣傳, 꿈에 서까래와 같이 큰 붓을 받은 뒤에 죽은 황제의 애책哀冊과 시호諡號를 기초했다고 한데서 남엄.

25, 당인자고유불량當仁自古有不讓 : <논어>[당인불양어사當仁不讓於師]”라는 말이 나옴.

26. 임리淋漓 : 풍부하고 생동감 넘치는 모양.

 

*작자소게

이상은(李商隱 813858),자는 의산義山호는 옥계생玉谿生만당시인晚唐詩人시의 문학가치 매우 높아서 두목杜牧과 함께 소이두小李杜로 일컬으며 온정균溫庭筠과 함께 온이溫李로 일컬어짐. <당시 삼백수>중에 24수 실려 있음.

 

                                      

<백련초해百聯抄解> 중에서 九 百聯抄解


<백련초해百聯抄解> 중에서 九


옮겨 쓴이 : 청계 조면희

백련초해百聯抄解 : 조선朝鮮 명종明宗 때, 김인후가 칠언한시七言漢詩 가운데 대對가 잘 이루어진 연구(聯句ㆍ連句) 곧 대련對聯이 잘된 구절 백련百聯을 뽑아 한글로 옮겨 펴낸 책冊.

본인은 여기서 대구對句 2련聯씩 초서로 옮기고 원문을 간단히 본인 방식으로 해설을 붙여 함께 올립니다.


<九>.

紅袖遮容雲裡月, 玉顔開笑水中蓮

靑菰葉上凉風起, 紅蓼花邊白鷺閑.


붉은 소매로 가린 얼굴 구름속 달같고,

활짝 웃는 예쁜 얼굴 물속의 연꽃일세.


푸른 줄풀 잎에 서늘한 가을바람 불고,

붉은 여귀꽃 곁에 백로 한가롭게 노네.




265 . 조면희 당시감상 이백李白편 몽유천모夢遊天姥 4. 당시삼백수감상


265 . 조면희 당시감상 이백李白편 몽유천모夢遊天姥 4.

. 조면희 <당시삼백수> 고시편

(). 칠언고시七言古詩 중에서

 

8-4. 몽유천모음류별夢遊天姥吟留別三段

작자 : 이백李白. 번역 : 청계 조면희

 

3 

제목 : 꿈에 천모산에 노닌 뒤 벗들을 떠나겠다는 이별시(3).

 

홀혼계이백동황경기이장차()

忽魂悸以魄動怳驚起而長嗟()

유각시지침석실향래지연하()

惟覺時之枕席失向來之煙霞()

 

세간행락역여차(上紙)고래만사동류수(上紙)

世間行樂亦如此(上紙)古來萬事東流水(上紙)

 

별군거의하시환()차방백록청애간()

別君去矣何時還()且放白鹿青崖間()

수행즉기향명산()

須行即騎向名山()

안능최미절요사권귀사아불득개심안()

安能摧眉折腰事權貴使我不得開心顏()

 

갑자기 떠나온 넋이 놀라 요동치며,

문득 꿈에서 깨어 길게 한숨쉬었네.

 

꿈 깨자 잠자리만 그대로 남아있고,

지나온 꿈속풍경은 간곳이 없어졌네.

 

인간 세상 즐거움 또한 이와 같아,

예로부터 모든 일들 흘러가버렸지.

 

오늘 그대들 떠나면 언제 돌아오리?

흰 사슴 푸른 절벽에 풀어놓았으니,

이 사슴 타고 명산 향해 떠나려하네.

권력 잡은 귀족에게 허리 꺾어 빌붙으며,

내 마음과 얼굴은 활짝 펼 수 없네 그려!

 


*감상

1. 내용 : 꿈속에 천모산에 올라 특별한 세계에 신선의 향연을 보다가

깜짝 깨고 보니 현실은 베개를 베고 잠든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러자 그 동안 벼슬자리에서 쫓겨나 떠돌이하며 다니면서도 꿈속에 만났던 신선의 세계처럼 벼슬길을 잊지 못하였던 자신을 돌이켜 보며 동로東魯 지역에서 사귀었던 진인知人들과 작별을 고하고 앞으로는 권력을 잡은 귀족들에게 더 이상 허리 굽히며 아첨하지 않고 실제로 꿈속세계처럼 그러한 신선세계인 자연을 향하여 자유롭게 떠나겠다고 한 이별시임.

 

2. 형식 : 평성인 마, 그리고 측성으로 상성인 지를 섞어 압운으로 한 칠언고시임.

*낱말

1. 백록白鹿 : 신선이 탄다는 전설상의 사슴.

 

*작자소개

이백李白701762: 자 태백(太白). 호 청련거사(靑蓮居士).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되는 중국 최대의 시인이며, 시선(詩仙)이라 불린다. 1,100여 편의 작품이 현존한다. 그의 생애는 분명하지 못한 점이 많아, 생년을 비롯하여 상당한 부분이 추정에 의존하고 있다. 그의 집안은 간쑤성[甘肅省] 룽시현[隴西縣]에 살았으며, 아버지는 서역(西域)의 호상이었다고 전한다. 출생지는 오늘날의 쓰촨성[四川省]인 촉()나라의 장밍현[彰明縣] 또는 더 서쪽의 서역으로서, 어린 시절을 촉나라에서 보냈다.

 

남성적이고 용감한 것을 좋아한 그는 25세 때 촉나라를 떠나 양쯔강[揚子江]을 따라서 장난[江南] ·산둥[山東] ·산시[山西] 등지를 편력하며 한평생을 보냈다. 젊어서 도교(道敎)에 심취했던 그는 산중에서 지낸 적도 많았다. 그의 시의 환상성은 대부분 도교적 발상에 의한 것이며, 산중은 그의 시적 세계의 중요한 무대이기도 하였다. 안릉(安陵:湖南省) ·남릉(南陵:安徽省) 동로(東魯:山東省)의 땅에 체류한 적도 있으나, 가정에 정착한 적은 드물었다. 맹호연(孟浩然) ·원단구(元丹邱) ·두보 등 많은 시인과 교류하며, 그의 발자취는 중국 각지에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이다.

 

이백은 당시 부패한 당나라 정치에 불만이 많았고 자신의 정치적 재능으로 발휘할 기회를 바랐다. 그가 43세 되던해인 742년 현종(玄宗)의 부름을 받아 창안[長安]에 들어가 환대를 받고, 한림공봉(翰林供奉)이라는 관직을 하사 받았다. 하지만 도사(道士) 오균(吳筠)의 천거로 궁정에 들어간 그는 자신의 정치적 포부의 실현을 기대하였으나, 한낱 궁정시인으로서 현종의 곁에서 시만 지어 올렸다. 그의 청평조사(淸平調詞)3수는 궁정시인으로서의 그가 현종 ·양귀비의 모란 향연에서 지은 시이다. 이것으로 그의 시명(詩名)은 장안을 떨쳤으나, 그의 정치적 야망과 성격은 결국 궁정 분위기와는 맞지 않았다. 이백은 그를 적선인(謫仙人)’이라 평한 하지장(賀知章) 등과 술에 빠져 술 속의 팔선(八仙)’으로 불렸고, 방약무인한 태도 때문에 현종의 총신 고역사(高力士)의 미움을 받아 마침내 궁정을 쫓겨나 창안을 떠나게 되었다. 창안을 떠난 그는 허난[河南]으로 향하여 뤄양[洛陽] ·카이펑[開封] 사이를 유력하고, 뤄양에서는 두보와, 카이펑에서는 고적(高適)과 지기지교를 맺었다.

 

두보와 석문(石門:陝西省)에서 헤어진 그는 산시[山西] ·허베이[河北]의 각지를 방랑하고, 더 남하하여 광릉(廣陵:현재의 揚州) ·금릉(金陵:南京)에서 노닐고, 다시 회계(會稽:紹興)를 찾았으며, 55세 때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났을 때는 쉬안청[宣城:安徽]에 있었다. 적군에 쫓긴 현종이 촉나라로 도망하고 그의 황자(皇子) 영왕(永王) ()이 거병, 동쪽으로 향하자 그의 막료로 발탁되었으나 새로 즉위한 황자 숙종과 대립하여 싸움에 패하였으므로 그도 심양(尋陽:江西省九江縣)의 옥중에 갇히었다. 뒤이어 야랑(夜郞:貴州)으로 유배되었으나 도중에서 곽자의(郭子義)에 의하여 구명, 사면되었다(59). 그 후 그는 금릉 ·쉬안청 사이를 방랑하였으나 노쇠한 탓으로 당도(當塗:安徽)의 친척 이양빙(李陽氷)에게 몸을 의지하다가 그 곳에서 병사하였다.

약력 이백李白-- 두산백과에서 인용


<백련초해百聯抄解> 중에서 (八) 百聯抄解

<백련초해百聯抄解> 중에서 (八)


옮겨 쓴이 : 청계 조면희


백련초해百聯抄解 : 조선朝鮮 명종明宗 때, 김인후가 칠언한시七言漢詩 가운데 대對가 잘 이루어진 연구(聯句ㆍ連句) 곧 대련對聯이 잘된 구절 백련百聯을 뽑아 한글로 옮겨 펴낸 책冊.

본인은 여기서 대구對句 2련聯씩 초서로 옮기고 원문을 간단히 본인 방식으로 해설을 붙여 함께 올립니다.







<八>.

聲痛杜鵑啼落月, 態娟籬菊慰殘秋.

遲醉客欺先醉客, 半開花笑未開花.


통곡하는 두견새는 지는 달 슬퍼하고,

고운 국화는 깊어가는 가을 위로하네


늦게 취한이는 먼저 취한이 무시하고,

반쯤 핀꽃은 피지않은 꽃 보고 비웃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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