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복수의 칼을 간 연소왕燕昭王
지난날 자지子之의 난리로 제나라의 침공을 받아 철저하게 초토화된 연나라는 다행히 사직社稷을 붙들었으나 너무나 파괴가 심하여 재기할 수 있는 여력을 쌓는데 28여 년이나 걸렸다. 이때 연소왕은 그야말로 와신상담臥薪嘗膽 제나라에 대한 복수의 일념으로 나라를 다스려 왔다.
당시의 국제정세는 제나라가 나날이 팽창하여 제민왕이 송宋나라를 멸망시키고 위나라와 초나라를 물리쳐 제나라의 위엄이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이었다. 이와 같이 강대한 제나라에 비하여 7개 강국 중에서도 가장 작은 나라인 연나라로서 제나라를 상대한다는 것은 달걀로 바위치기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볼 때 제나라의 비대함은 주위 여러 나라의 견제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기회만 있으면 나머지 여러 나라가 힘을 합하여 세력을 삭감시키려고 할 때이기도 했다.
연소왕은 조회 자리에서 백관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이제 우리의 국력도 어느 정도 회복되었으니 큰일을 도모해 볼 때도 되었다. 이렇게 관망만 하고 있다가는 내 생전에 지난날 제나라에서 받은 치욕을 갚지 못할 것 같다. 그러니 국내외를 막론하고 훌륭한 인재를 초빙하여 국력을 더욱 강하게 만들려고 하는데 좋은 방법이 없겠느냐?”
연소왕을 처음부터 모시고 국사國事를 계획하여 부국강병의 계책을 세우는 책사策士 곽외郭隗가 말하였다.
“대왕께서 천하의 훌륭한 선비를 초치하려거든 소신인 곽외를 먼저 등용시키십시오. 그러면 천하에서 이 곽외보다 훌륭한 선비들이 ‘곽외 같은 인재도 연나라에서 대우받는데 우리가 가면 더욱 큰 대접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천 리를 멀다고 하지 않고 모여들 것입니다.”
연소왕이 다음 날 바로 황금 누대樓臺를 짓고 곽외를 그 곳에 모신 뒤에 스승으로 섬겼다. 그러자 과연 사방에서 인재들이 모였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이 조趙나라에서 극신劇辛이 왔고, 위나라에서 악의樂毅가 왔으며, 제나라에서는 추연鄒衍이 왔다.
이들 중에 악의는 원래 조나라 사람으로 위문후를 도와 중산국을 정복시킨 악양樂羊의 손자로서 할아버지의 봉읍封邑인 영수靈壽에 살다가 위나라에 벼슬하였지마는 크게 써 주지 않으므로 연나라로 들어온 것이다.
연소왕은 악양의 명성을 익히 들었으므로 그 손자 악의를 불러 제나라를 정복할 병법에 대한 의논을 듣고 크게 기뻐서 그를 신하로서가 아니라 손님의 자격으로 특별 저택을 만들어 거처하게 하려고 하니 악의가 말하였다.
“신이 이곳에 온 것은 손님으로 대우받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말직末職이라도 좋으니 신에게 직책을 하나 주시면 힘을 다하여 대왕을 섬기겠습니다.”
연왕이 그를 상장군上將軍으로 봉하여 병사를 조련하는 권리를 주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 왕은 악의를 불러 말하였다.
“지금 제나라가 비록 강성하기는 하나 제민왕이 교만하여 이웃 나라의 미움을 받고 안으로는 포악한 정치를 일삼아 충신들이 물러나고 맹상군 같은 인재도 추방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때를 틈타서 침공하게 되면 우리에게 충분히 승산이 있지 않겠습니까?”
악의가 대답하였다.
“제나라는 강대국이므로 우리나라의 힘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듭니다. 주변 제후들의 후원을 받아야 가능합니다.”
연왕은 곽외와 추연 및 극신 등을 조나라와 진나라와 한나라로 보내어 제나라를 함께 침공하도록 설득시키어 각 나라에서는 많은 장병을 보내 주었다.
드디어 악의는 연나라의 군대를 전부 통솔하고 또 각 나라에서 보낸 연합군을 이끌고 마침내 제나라 국경을 침공하였다. 이때가 주난왕 31년(기원전 284년)으로서 연나라가 제나라에게 침공당한 지 만 30년이 되는 해이었다.
제민왕은 연나라의 연합군이 공격해 온다는 소문을 듣고 한섭韓聶을 대장으로 삼고 스스로 중군을 인솔하여 국경 근처인 제수濟水 가에 진을 쳤다. 그러나 그동안 전쟁에 거의 패배해 본 일이 없는 제민왕은 교만한 마음이 생긴데다가 연나라의 군대는 과거에 참패시킨 경험이 있기 때문에 비록 후원군이 있다고 하더라도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과소평가하였던 것이다.
한편 악의는 모든 일을 병사들 앞에서 솔선수범하여 일당백一當百의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으므로 악의 명령이면 모든 병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진에 돌진하였다. 드디어 양편 군대는 제수濟水를 사이에 두고 대치한 중에 연합군을 먼 후면으로 돌아 제나라의 배후를 공격하게 하였다. 이때 주력 부대가 후면으로 이동하는 틈을 타서 악의의 군대는 제수를 건너 일대접전을 벌였다. 마침내 제나라 군대는 패배하였고 패배하여 도망가는 제나라 군대의 시체는 들판에 늘펀하였다. 제나라 대장 한섭은 이 전쟁에서 전사하고 제민왕은 수도인 임치로 도망갔다. 그러나 악의의 군대는 방비할 겨를을 주지 않고 그대로 임치성까지 가서 공격하게 되니 마치 칼로 대나무를 쪼개는 형세와 같아서 처음 쪼개기가 어렵지 일단 한번 칼이 들어가면 나머지는 힘 안들이고 쪼개지는 것이었다. 이것을 파죽지세破竹之勢라고 한다.
제민왕은 패잔병을 추스를 기회도 없이 연나라의 추격을 받게 되니 밤에 측근의 몇몇 신하들만 이끌고 수도를 버리고 도망을 갔다. 다음 날 악의는 임치에 입성하여 제나라의 궁실을 모두 불태우고 제나라의 금은보배는 말할 것도 없이 지난날 연나라에서 빼앗아 갔던 연나라의 보물들도 모두 찾아 본국으로 실어 보낸 뒤에 함락된 제나라의 수도로 연소왕을 불러 들였다.
(二)이빨은 빠졌어도 호랑인 호랑이지.
한편 제민왕齊湣王은 몇 사람의 측근 종자만 데리고 곧바로 가까운 나라인 위衛나라로 갔다. 위후衛侯가 성문까지 나와서 맞이하여 궁궐에 모신 뒤에 그를 정전正殿에 모셨다. 그리고 신하가 임금에게 들이는 예로써 그를 대접하였다. 그러나 반대로 민왕은 위후를 마치 자신의 종자처럼 함부로 대하였다. 이것을 본 위나라 신하들은 괘씸하게 생각하여 밤중에 제민왕이 타고 온 수레를 모두 훔쳐 도망을 가버렸다. 다음 날 민왕이 성이 나서 위후를 나무라려고 위후를 찾았으나 날이 저물도록 위후는 나타나지 않았다. 밤에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두려움을 느낀 제민왕은 종자들을 거느리고 초라한 모습으로 몰래 도망하여 노나라의 국경에 들어갔다. 그는 국경을 관리하는 관리에게 명령하였다.
“지금 천자天子가 순수巡狩 차 노나라에 들어왔으니 노후魯侯는 짐朕을 천자의 예로 맞이하도록 하라고 전달하라.”
노후가 그 말을 듣고 관리에게 천자의 행차는 우리나라에 들어올 필요가 없다고 하라고 하며 돌려보내라고 하였다. 다음은 추鄒나라로 갔다. 추나라는 원래 주邾나라에서 명칭을 바꾼 나라로서 그곳의 군주가 말하였다.
“우리같이 조그마한 나라에서는 천자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국경을 지키는 군대를 시켜 제민왕의 행차를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민왕은 할 수 없이 거주莒州로 들어가서 잠시 추격군을 피하였다. 그리고 사람을 시켜 초나라로 가서 구원군을 청하였다. 구원군을 보내어 연나라 군대를 물리쳐 주면 그동안 제나라에서 빼앗았던 회북淮北의 땅을 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초경양왕楚頃襄王은 요치淖齒를 대장으로 삼아 20만의 군사를 인솔하고 가서 제나라를 구원하러 간다는 명목으로 제민왕에게 땅을 접수해 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부탁하였다.
“제민왕이 급하니까 우리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것이니 가서 형세를 살펴보고 어쨌든 초나라에 유리한 편으로 결말을 짓고 오도록 하라.”
요치는 그길로 바로 제민왕이 있는 거주에 가니 민왕이 요치에게 상국相國의 인장을 채워 주고 제나라의 병권兵權도 아울러 다 준다고 하였다. 요치는 연나라 연합군의 세력이 왕성하여 쉽게 제압할 수 없음을 간파看破하고 연병장에 병사들을 도열시킨 뒤에 제민왕에게 열병閱兵을 하라는 구실로 장단將壇 앞에 나오게 한 뒤에 그 자리에서 민왕을 잡아 병사들의 앞에 세우고 제민왕이 저질은 죄를 낱낱이 들어 폭로하였다.
“이자가 제나라 왕이라는 자이다. 그동안 제나라가 망한다는 징조가 3번 있었다. 첫째 제나라의 수도首都에 핏빛 비가 내렸는데 이는 하늘이 제나라가 망할 것을 예고한 것이고, 둘째 영박嬴博 지방에 땅이 갈라져서 샘물이 솟아올랐는데 이는 땅이 예고한 것이고, 사람이 궁궐 안에 들어와 까닭 없이 울음을 그치지 않고 울었는데 이는 사람이 예고한 것이다. 이와 같이 나라가 망할 징조가 나타났는데도 반성하지 않고 학정虐政과 교만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으니 오늘날 나라가 망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제민왕에 대한 성토가 끝난 뒤에 제민왕의 발목을 끈으로 묶고 대들보에 거꾸로 매달아 놓으니 제민왕은 3일 만에 참혹하게 죽고 말았다.
(三)제나라의 복국운동
제나라의 대부大夫 집안의 자식으로 나이 12세 밖에 안 된 왕손고王孫賈는 아직 벼슬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닌데도 집에 있는 노모老母에게 효성이 지극하다는 소문을 듣고 민왕이 그를 기특히 여겨 자신이 거처하는 궁 안에 머무르게 하고 그를 사랑해 주었다. 그런데 뜻밖에 연나라 군대의 침공을 받아 쫓겨 다니는 몸이 되었으나 왕손고는 민왕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위나라에 갔을 때 민왕이 위나라로부터 뜻밖에 습격을 당할까 봐 밤에 몰래 궁을 빠져나가 노나라로 가느라고 미처 신하들을 다 데려가지 못하였다. 그때 왕손고는 왕의 행방을 잃고 수도인 임치로 돌아와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어머니가 그를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고 이렇게 나무랐다.
“네가 아침에 나갔다가 늦게 돌아오면 내가 문 앞에 나와 기다리고 네가 저물녘에 나가 돌아오지 않으면 내가 마을 어귀의 이문[려閭]을 의지하고 서서 기다렸는데 임금께서 신하를 기다리는 마음이 어미가 자식을 기다리는 마음과 어찌 다르겠느냐? 네가 이 나라 왕의 신하가 되어 가지고 임금이 아무리 밤에 도망갔다고 하나 네 무슨 낯으로 집으로 돌아온다는 말이냐?”
왕손고의 어머니의 이 말에 연유하여 부모가가 외출한 자식의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을 ‘의려지망倚閭之望’이라고 하였다. 이날 왕손고는 그길로 도로 민왕이 간 곳을 찾아 나섰다가 마침내 거주에 도착하였으나 제민왕은 이미 요치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였다. 왕손고는 거리에 다니면서 요치가 왕을 죽였으니 이 원수를 갚자고 큰 소리로 외치고 다녔다. 그러자 거주의 백성 중에 많은 사람이 모여서 왕손고를 중심으로 요치에게 복수를 하자고 결의하였다. 이때 요치는 제민왕을 죽인 뒤에 거주 성안에서 날마다 많은 여자를 거느리고 술에 취하여 본국으로 돌아갈 줄도 몰랐다. 이와 같이 술에 취하여 밖의 경비가 허술한 틈을 타서 거주 고을의 젊은 장사들은 한꺼번에 밀려들어 요치와 요치의 부하들을 살해하고 성문을 닫은 뒤에 성 밖에 진치고 있던 군사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니 초나라 군사들은 장수를 잃고 뿔뿔이 흩어져서 본국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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