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도은이숭인선생시집陶隱先生詩 12 수

        도은선생시집陶隱先生詩 12 수


                                저자 : 도은 이숭인陶隱 李崇仁

                                번역 : 청계 조면희淸溪 趙冕熙

                                    출전 : <도은선생시집陶隱先生詩集>

  •  

  • (一) 大駕南狩

    辛丑 仲冬大駕南狩 十五歲作


    白日村居遠。丹心魏闕懸。

    縱橫胡氣亂。聲息羽書傳。

    鍾鼎多銘刻。干戈幾歲年。

    松都根本地。會見凱謌旋。


    *해설 : 임금의 행차가 남쪽에 순행함

    신축년(1361년, 공민 10년. 홍건적 침입으로 왕이 피난 감) 동짓달에 임금의 어가가 남쪽에 순수함. 15세 때 지음.


    임금의 총명이 밝은 때 시골에 살지만

    임금 향한 충성심은 궁궐로 달려가네.


    오랑캐의 기세가 함부로 날뛰니

    적을 토벌하는 소식만 전해오네.


    종과 솥에 공신들의 기록은 많으나

    그들은 전쟁을 몇 해나 참가했는가?


    송도는 우리 나라의 근본 되는 곳

    마침내 개선가 부르며 돌아오겠지.


    (二) 丁未元朝


    歲次無停畢。人情易嘆吁。

    椒盤聞古頌。桃板覔新符。

    日照窮陰破。風吹萬態敷。

    頭顱還似舊。祗得飮屠蘇。


    *해설 : 정미년(1367년 공민 16. 작자 21세) 설날


    흐르는 세월 멈춤도 끝도 없는데

    사람들은 쉽게 흘러감을 한탄하네.


    산초 넣은 술에 옛날 노래 듣고

    복숭아 판자에 새해 부적을 쓰네.


    햇볕은 오래된 겨울 추위를 쫓고

    바람은 만 가지 형상을 펴 주지.


    머리 모양은 아직 예나 같지만

    그저 설날 도소주 얻어 마시네.


    *낱말

    1.초반椒盤 : 산초를 담은 쟁반. 옛날 정월 초하룻날에 소반에 산초를 놓았다가 술을 마실 때 그 산초를 술에 넣어서 마셨다. 당나라 두보杜甫의 <수세시守歲詩>에 :“守歲阿戎家, 椒盤已頌花.아융의 집에서 섣달 그믐밤을 새우는데 이미 산초 꽃을 찬양하는 노래와 함께 산초 쟁반이 나왔네.” 하여 산초는 설날 아침에 먹는 향초임.


    2.도부桃符 : 전해 오는 이야기에 신도神荼와 율루鬱壘 두 귀신이 백가지 마귀를 쫓아낼 수 있으므로 새해 아침에 문 곁에다가 두 개의 복숭아 나무 판자를 세우고 그 위에 두 귀신의 이름이나 혹은 모양을 그려 놓으면 마귀가 도망간다고 함. 출전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3. 궁음窮陰 : 한 해와 함께 겨울이 끝나는 때를 가리킴.


    4.두로頭顱 : (1).두로頭盧라고도 하며 해골[骷髏]을 뜻함. (2) 기억력이나 정신등을 가리키는 뇌대腦袋.


    5.도소屠蘇 : (1). 풀 이름 (2) .도수屠酥라고도 하며 약주 이름. 옛날에 이 술을 설날에 먹는 풍습이 있음.


    (三) 嘉禮

    丁未十月二十九日。扈駕康安殿。是日嘉禮。

    后妃美化被周南。千載依然見葛覃。

    盛代卽今開盛禮。小臣稽首祝多男。


    *해설 : 혼인의식
    정미년(1367. 공민16, 작자 21세) 10월 29일 강안전에서 임금을 모심. 이
    날 가례(嘉禮 : 공민왕의 後妃와의 혼인인듯)를 행함.


    왕후 비빈이 훌륭히 됨은 <시경>의 주남장의 힘

    천년 동안 똑 같이 <시경>의 갈담장에 나타났지.


    훌륭한 시대인 오늘 날 훌륭한 의식을 행하니

    하찮은 이 신하 머리 조아려 다남하기를 비네.


    (四) 短篇

    辛亥 冬夜。陪土亭先生飮。連倒十數盃。大醉。土亭呼韻使賦短篇。


    君不見

    隆中長嘯一布衣。歲晚龍翔扶漢基。

    又不見

    陶隱之齋醉書生。四壁蕭索猶橫經。

    丈夫出處未易議。肉眼紛紛徒爾耳。

    酒酣仰天聲嗚嗚。彼老蒼兮眞虗無。

    出門一笑知者誰。先生本自同襟期。


    *해설 : 단편

    신해년(공민왕 20년, 1371년, 작자 25세) 겨울밤에 토정선생을 모시고 술을 마시었는데 열두어 잔을 연하여 마시고 크게 취하여 토정이 운을 부르면서 나에게 단편 시를 짓게 하였다.


    그대는 보지 않았는가?

    융중에서 휘파람 불며 살아가던 선비 제갈량이

    시기 늦게 용처럼 날아 한나라 기틀 붙든 것을.


    또 보지 않았는가?

    도은의 서재에서 술 취한 서생인 내가

    벽마다 쓸쓸히 경서만 쌓여 있는 것을.


    대장부의 출세와 은둔은 함부로 못 따지지만

    공연히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


    술 취하면 하늘을 향해 중얼중얼 불평하기를

    저 늙은 친구 참으로 너무 허무하기만 하다고.


    우습다, 문에 나가면 누가 알아준단 말가?

    토정선생만 본래 취미가 나와 같은 것을


    *노창老蒼 : 늙은이를 뜻하는 말. 여기서는 하늘을 의인화해서 가리킴.


    (
    五) 除夜

    辛亥除夜。呈席上諸公。 二首


    <一>

    落落已違世。悠悠仍感時。

    餘年付羲易。卽事讀坡詩。

    坐久燈花落。看來斗柄移。

    男兒心有在。除子更誰知。


    *해설 : 섣달그믐밤
    신해년(1371년, 공민 20년, 25세) 섣달그믐 밤에 함께 자리한 여러 사람들에게 바침. 두 수


    남과 동떨어져서 이미 세상과 어긋났는데

    끝없는 생각 그대로 시간의 흐름을 느끼네.


    남은 세월은 복희씨의 주역에 붙여놓고

    사물의 느낌은 소동파의 시나 읽으려네.


    오래 앉아 있으니 등불 심지 타서 떨어지고

    하늘을 쳐다보니 북두성의 자루가 옮겨갔네.


    남자의 마음 두어야 할 곳 있는데

    그믐밤의 한계를 누가 어찌 알까?


    <二>

    邂逅成佳會。都爲少壯時。

    風流東晉俗。瀟灑盛唐詩。

    世事正紛糾。交情無改移。

    殷勤惜白日。愼勿負相知。


    모처럼 만나 아름다운 모임 만들으니

    모두 젊고 한창 때를 위한 자리일세.


    멋스러운 놀이는 동진 때 죽림 풍속이고

    고아한 멋은 성당 때 시인들의 기풍이지.


    세상일들은 정히 얽히고설키었으나

    사귀는 정은 결코 바꿔지지 않았네.


    은근히 시간 가는 것을 아끼노니

    서로 친한 교분을 저버리지 말세.


    (六) 呈三峯

    癸丑三月初六日有雪。呈三峯。


    二月到三月。雨雪也頻頻。

    未放重裘解。仍須綠酒親。

    乾坤且氛祲。草木謾精神。

    排悶新詩句。携將寄故人。


    *해설 : 삼봉에게 드림

    계축년(1373년. 공민 22, 작자 27세) 3월 초 6일에 눈이 와서 삼봉에게 드림.


    이월 달에서 삼월까지

    눈이 자주도 내렸다네.


    아직 두터운 갖옷 못 벗고

    그냥 술 마시는 일만 잦네.


    하늘과 땅은 요상한 기운이고

    풀과 나무는 봄정신을 속이네.


    답답함 물리치려 새 시 지어

    옛 친구에게 부치어 보내네.


    (七) 應敎作

    癸丑十月初八日。扈駕西江卽事。應敎作。


    駐蹕平皐炁像新。非煙非霧靄江津。

    擬將献賦才華薄。誰道詞垣得箇人。


    *해설 : 임근의 명령에 응하여 지음

    계축년(1373년. 공민22, 작자 27세) 10월 초8일. 임금을 모시고 서강에 나갔다가 명령을 받고 그 자리에서 읊은 시.


    평평한 언덕에 어가가 멈추니 기상도 새로워져

    연기도 안개도 아닌 아지랑이 강나루에 끼었네.


    글을 지어 바치려고 노력하나 재주가 모자라니

    누가 시문을 맡은 곳에 알맞은 사람 있다 했나?


    (八) 霧

    癸丑閏十一月十四日霧


    久怪冬寒薄。今驚曉霧新。

    轉頭迷去路。擧目失比鄰。

    似雨難生物。如塵祗汚人。

    五侯封旣遠。三里術何神。

    爕理知誰責。薰蒸入鼻辛。

    吾身要自愛。且飮一盃醇。


    *해설 : 안개
    계축년(1373년, 공민22, 작자 27세) 윤동짓달 14일 안개 낌


    겨울 날씨 푸근한 것이 괴이하더니

    오늘은 새벽안개 놀랄만큼 끼었네.


    고개를 돌려보니 갈 길이 희미하고

    똑 바로 보아도 이웃집도 안 보이네.


    비와 같으나 물건이 자라기 어렵고

    티끌 같아서 사람을 더럽힐 듯하네.


    붉은 안개 끼게 한 다섯 제후 봉한 일은 먼 옛날

    삼리에 안개 끼게 한 도술,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자연에 순응하여 적응케 하는 일은 정승의 일인데

    어찌해 겨울에 더운 김이 올라와 코를 맵게 할까?


    내 몸 내가 아끼는 것이 중요한 일이니

    몸 위하여 한 잔의 술을 또한 마시려네.


    *낱말

    1.다섯 제후 봉한 일 : 후한後漢 성제成帝 때 황제의 외척이며 왕망王莽의 친척인 왕씨王氏가 정권을 잡아 그 친척에게 오후五侯를 봉하니, 그날에 누른 안개가 사면에 온종일 꽉 끼고 티끌이 옷을 더럽혔다고 함.


    2.삼리무三里霧 : 후한後漢 장해張楷는 도술道術을 좋아하여 5리 안개를 만들고, 같은 때의 배우裴優라는 사람은 3리 안개를 만들었다 함.


    (九) 赴京師

    丙寅十二月十六日赴京師。


    弧矢當年志四方。如今奉使幸觀光。

    江分鷰尾成天塹。山似龍蟠遶苑墻。

    金碧雲開尊象魏。綺羅風動照康莊。

    神京制度超前古。說與卿人語合長。


    *해설 : 중국 서울에 사신으로 감
    병인년(1386년. 우왕12. 작자 40세) 2월 16일 명나라 수도 남경南京에 사신으로 감.


    출생 때 쑥대 화살은 사방에 뜻을 두라는 뜻

    오늘날 다행스럽게도 사신으로 구경가게 됐네.


    강물은 제비 꼬리처럼 갈라져 남경을 둘러쌌고

    산맥은 용처럼 꿈틀꿈틀 궁궐의 성담 만들었네.


    오색구름 같은 궁문 열리자 궁궐이 솟아 있고,

    비단 휘장 바람에 펄럭이자 큰 길이 펼쳐졌네.


    중국 서울의 제도가 어느 시대보다 뛰어 났으니

    고향 사람에게 이야기해주려면 설명이 길어지리.


    (十) 蒙賜冠服

    (1388년?. )十七日早朝。上御奉天門。臣崇仁等蒙賜冠服。獲與朝官列拜午門之外。


    黃金闕角上初暾。踵武夔龍謁至尊。

    須信聖恩無內外。朱衣玉佩映端門。


    *해설 : 관복을 하사받고

    연대(1388년? : 작자가 두 번째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42세 때일 듯) 17일 아침에 황제가 봉천문에 나와 신하인 숭인등에게 관복을 내려주고 조관들과 함께 오문 밖에서 나열해 섰도록 허락 받음.


    황금 장식의 대궐 짐에 아침 해가 올라오자

    훌륭한 신하들이 줄지어 황제에게 배알하네.


    황제 은혜는 나라 안팎이 따로 없음을 알겠고,

    붉은 옷과 허리에 찬 옥들은 정남문에 비쳤네.


    (十一) 龍江驛開船


    畫船撾鼓發江關。正是朝正使者還。

    更向都門一回首。五雲飛繞紫金山。


    *해설 : 용강역에 배를 탐.


    그림 같은 배 북치며 강나루 출발하니

    이게 바로 조정사가 돌아오는 행차일세.


    다시 중국 도성 문을 향하여 돌아보니

    오색구름이 날아 자금산을 둘러싸 있네.


    *낱말

    1.용강역龍江驛 : 중국 명나라 초기의 수도인 남경 근처의 강나루. ‘명성조明成祖가 사절단에게 잔치를 베풀어주고 또 상도 하사하고는 또 명하기를 용강역龍江驛에서 각국의 사신들에게 잔치를 베풀어 전송하라고 하였음.


    2.자금산紫金山 : 중국 남경의 진산鎭山.

    3.조정사朝正使 : 조정사는 정월 원조에 황제에게 신년 인사를 하기 위해 보내는 사신


    (十二) 寄三峯隱者


    華山南望一髮微。山中幽居晝掩扉。

    渠心豈肯避世者。自是俗人來往稀。

    一自菩提心學傳。多少高士愛逃禪。

    菁莪豐芑久寂寞。空讀昌黎原道篇。


    *해설 : 삼봉은자에게 부침
    삼봉에 숨은 사람(정도전이 1391년 경 탄핵을 받아 고향인 봉화에 유배되었을 때일 듯)에게 보냄.


    은사가 사는 화산을 남쪽 아득히 바라보니

    산중에 숨어 살므로 낮에도 사립을 닫았네.


    그 마음에 세상을 피하고 싶어 그럴까마는,

    이로부터 속인들의 오가는일 드물어졌겠지.


    한번 보살로부터 마음으로 학문을 전해 받자

    많은 선비들 세상을 피해 참선을 사랑하였네.


    <시경>의 청아와 풍기가 오래도록 실행안돼

    공연히 박애를 주장한 한창려 원도편만 읽네.


    *낱말

    1.화산華山 : (1) 중국 오악 중의 하나. (2)삼각산의 별칭. (3)은자들이 숨어사는 산의 별칭. 여기서는 (3)의 뜻. 송(宋) 나라 때의 은사隱士 진단陳摶이 은거하던 곳인데, 그 당시 많은 은사들이 화산으로 진단을 찾아와 노닐곤 하였으므로, 전하여 높은 은사를 찾아가 노닐고 싶다는 뜻이다. <송사宋史>


    2.청아菁莪 : 인재 교육을 노래함. <시경詩經> 소아小雅 청청자아菁菁者莪


    3.풍기豐芑 : 선왕先王의 유업을 이어받아 자손에게 많은 복록을 전하는 일을 뜻한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문왕유성文王有聲


    *작자소개

    이숭인 [李崇仁, 1347~1392] : 본관 성주(星州). 자 자안(子安). 호 도은(陶隱). 삼은(三隱)의 한 사람이다. 공민왕 때 문과에 장원, 숙옹부승(肅雍府丞)이 되고 곧 장흥고사(長興庫使) 겸 진덕박사(進德博士)가 되었으며 명나라 과거시험에 응시할 문사(文士)를 뽑을 때 수석으로 뽑혔으나 나이가 25세에 미달하여 보내지 않았다.


    우왕 때 김구용(金九容)·정도전(鄭道傳) 등과 함께 북원(北元)의 사신을 돌려보낼 것을 주청하다가 한때 유배, 그후 밀직제학(密直提學)이 되어, 정당문학 정몽주(鄭夢周)와 함께 실록(實錄)을 편수하고 동지사사(同知司事)에 전임하였으나 친명(親明)·친원(親元) 양쪽의 모함을 받으며 여러 옥사(獄事)를 겪었다.


    1386년(우왕 12)에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후 이인임의 인족(姻族)이라 하여 유배되기도 하였다. 1389년 창왕 때에도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후에도 혼란기를 맞아 유배·감금되었고, 1392년(공양왕 4) 이방원에게 정몽주가 살해되자 그의 일당으로 몰려 유배되었다.


    조선이 개국할 때 정도전의 원한을 사서 그의 심복 황거정(黃巨正)에게 살해되었다. 문장이 전아(典雅)하여 중국의 명사들도 탄복하였다. 저서에 《도은집(陶隱集)》이 있다.

                       ---인물 소개 인터넷에서 인용--

    by rkdmsaus | 2009/11/08 08:31 | 고인들의 시화 | 트랙백(1) | 덧글(1)

    잠시 쉬어가기-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황후

                                       汨羅江詩人 提供 寫眞

                        ---요르단 국왕 압둘라의 왕후 라니아--

    世上最美麗的皇后


    世界上最美麗的皇后



      中東王室財源滾滾,摁住了大油田,就扼住了世界經濟的命脈。阿拉伯世界往往是男人當家,女人再俊美,也要罩在嚴實的黑紗後面,

     

    所有的生機,就是那黑紗縫隙里,一對水汪汪的大眼珠。如果說這是風俗的話,有位特立獨行的美女,改變了世界對阿拉伯女性的種種成見。

     

    她被譽為世界上最美麗、最優雅的王后,她就是約旦王國現任國王阿卜杜拉的王后——拉尼婭。

      



      這位美貌絕倫的約旦王后,皮膚光潔細膩,五官輪廓分明。有趣的是,王后和其他阿拉伯女子的氣質完全不同,

     

    她喜歡穿著牛仔褲、牛仔短褲、高跟鞋,披散一頭極富光澤的棕色秀發,經常面帶微笑。

      



      她表現出穆斯林婦女現代化的一面,徹底顛覆了西方人的種種偏見。拉尼婭,曾被美國《時代》周刊、意大利《時尚和娛樂》等知名雜志當做封面人物。

     

    甚至有西方媒體將她與杰奎琳肯尼迪、戴安娜相提並論。更有甚者,干脆將她稱為阿拉伯世界的戴安娜

      盡管約旦是中東地區的小國,9萬平方公里,人口不足600萬;但是,王儲要想自由戀愛、最終娶個心上人做王后,也沒那麼簡單。

     

    應該說,阿卜杜拉和拉尼婭的婚姻,像一段浪漫傳奇,頗具戲劇性。

      



      1970年,拉尼婭出生于巴勒斯坦裔的醫生家庭,從小長在科威特。別看她天生麗質,卻不像一般女孩兒那樣,做離奇的明星夢。

     

    她很現實,願意踏踏實實讀書,接受系統的高等教育,將來當一名管理或政治經濟理論方面的專家。

      



     拉尼婭先就讀于科威特國際學校,能講一口非常流利的英語。此後,又入美利堅大學開羅分校,攻讀工商管理專業。

     

     1991年海灣戰爭後,拉尼婭畢業,隻身赴約旦首都安曼,先在第一花旗銀行分行進修,後來跳槽,進了隻果公司工作。

     


      



      1993 1月,拉尼婭忽然交上桃花運了。一場偶然的晚宴,徹底改變了她的人生軌跡。

     

    晚宴上,拉尼婭結識了牛津大學的高材生阿卜杜拉。當時,她並不知道這個年長的小伙子,正是約旦王子。

     

    即便摸著底細,也無所謂,約旦國王有一群兒子呢,阿卜杜拉並不是王儲。所以,拉尼婭做夢都想不到,自己能成為將來的約旦王后。

      



      剛開始,阿卜杜拉並不受寵。他父母才離婚不久,王儲大位早就落在了叔叔頭上。在這種情況下,阿卜杜拉可以自由自在地戀愛。

     

    很難想象,他的意中人居然是個普通百姓,而且來自巴勒斯坦的家庭。好在約旦王子,並沒有陷入權力漩渦,有的是精力追求拉尼婭。

      



      據說,當阿卜杜拉把未婚妻帶到父親跟前時,老國王侯賽因也對兒媳婦的美貌贊嘆不已。

     

    僅僅5個月,他們的戀情便修成正果了。1993610日,22歲的拉尼婭和阿卜杜拉王子,手牽手,走上了紅地毯。

     

    還有個鮮為人知的細節呢,豪華慶典開始,要給新王妃加冕了,可是沒準備好瓖嵌鑽石的王冠,只好從外邊借一頂鑽石王冠來救急。
      



      拉尼婭像做夢一樣做了約旦王妃,卻預料不到有朝一日會榮登王后。命運偏偏開了個大玩笑,忽然把人推向風口浪尖,這很像中國古人所說的富貴迫人來

     

    約旦老國王侯賽因,眼看就不行了,彌留之際,他陡然回心轉意,臨時把王位傳給了兒子——阿卜杜拉。

     

    于是,拉尼婭王妃順理成章地榮登第一夫人”——約旦哈希姆王國王后。這位年輕女子,立刻捲入輿論中心,常人覬覦的大富大貴,讓她感覺很沉重。

      



      王后的確不好當。畢竟,養尊處優、吃喝玩樂,不是拉尼婭的性格,她接受過系統的西方教育,而且來自于民間,有足夠的能力為國家做點兒什麼。

     

    婚後,拉尼婭請求丈夫允許︰絕不充當阿卜杜拉身邊的花瓶,她希望積極參與各種社會事務。

      



      中東王室也得顧忌穆斯林法規,女人在阿拉伯世界拋頭露面,需要排除很多障礙。

     

    阿卜杜拉打開了擦邊球︰在王宮里建了一座約旦基金會事務所,拉尼婭可以坐主後宮,統籌基金會,促進國內的婦女工作。

     

    除了創辦企業,增加就業之外,拉尼婭還成立了一家援助受虐待兒童的專門機構,並親自擔任兒童權利的辯護人。

      



      盡管拉尼婭是典型的現代派,她熱衷于新鮮事物,第一個把互聯網教育引進中東。

     

    此外,她為女性在議會和內閣中爭取座位,甚至和其他王室女性,出現在抗議以色列軍事行動的游行隊伍里……這些驚世駭俗的行動激怒了一些保守派,

     

    2002年一場足球賽上,居然有人朝阿卜杜拉國王叫嚷︰休了她!休了她!休了誰呀?讓國王罷黜王后嗎?疏不間親,這不是開玩笑嗎。

     

    阿卜杜拉國王才捨不得呢。

      目前,阿卜杜拉夫婦有四名子女,外界看來,年屆四十的拉尼婭,依舊光彩照人,風度翩翩。

     

    在各種公開場合,她華麗的服飾、優美的身材、迷人的微笑,令所有來賓傾倒。拉尼婭都堪稱現代女性的典範。

     

    多年來她為了維護婦女兒童權益,八方奔走。積德行善,造福一方,自然更具人格魅力。所謂世界上最美麗、最優雅的王後,絕不僅靠一張俊俏的臉蛋兒吧。


    by rkdmsaus | 2009/11/04 11:53 | 쉬어가기 | 트랙백 | 덧글(1)

    (165)운곡행록과 광문의 신드롬

                                   운곡행록과 광문의 신드롬

                                                                                 필자 : 청계 조면희

     




      광문은 연암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이다. 광문은 청계천 수표교 아래서 거지 생활을 하다가 집단 따돌림을 받고 쫓겨났다. 그는 밤에 추위를 피하려고 남의 집 헛간으로 숨어들어 갔다가 도둑으로 몰렸는데 도둑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 주인은 그를 약방의 심부름꾼으로 취직을 시켜 주었다. 그는 여기서도 도둑의 의심을 받다가 그가 정직한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진 뒤로 이 사실이 온 장안에 퍼지면서 그의 정직성은 마침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지고 커져서 고관대작의 안방이나 유흥업소의 기생들의 입에까지 오르내렸다. 급기야 장안의 일등 기생은 임금의 사위인 부마도위보다 광문을 위하여 춤을 추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증후군症候群을 나는 광문신드롬이라고 부르고 싶다.

      운곡선생의 일화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보아야하지 않을까? 처음에는 이조개국 이후 선비와 선비들 사이에 한 개의 조그마한 에피소드로 떠돌다가 이것이 점점 발전하여 나아갔으나 이 이야기는 새 왕조王朝의 개국 정당성에 저촉되므로 아마도 쉬쉬하며 퍼져나갔을 것이다. 그 뒤 200여 년의 세월이 지나고 임진왜란이라는 외세의 침략을 받아 왕가의 권위도 추락해 지고 또 개국이후 강력한 후원자인 명나라의 세력도 한꺼번에 쇠약해지니 사람들은 전왕조의 패망 이면의 베일을 벗겨 보고 싶었다. 그래서 당시 강원도 관찰사로 갔던 박동량朴東亮이 운곡선생의 후손을 찾아가서 그동안 깊이 소장되어 있던 유고遺稿를 찾게 되었다. 그런데 소장본은 운곡선생이 평생 동안 연대를 적어가며 시간 순으로 쓴 시책詩冊뿐이었다. 그는 이것을 가지고 관아에 와서 <운곡시사耘谷詩史>라는 제목으로 발간하였다. 이때가 1603년이었다.

      박동량은 이 책의 서문 첫머리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嘗聞原州人元天錫在麗末隱居著書。言禑,昌父子非辛出事甚悉。逮我朝。閉門終身。其淸風峻節。直可與圃,冶諸公相伯仲。而子孫祕其書久益密。人無得以見者。幷與其名遂泯泯不傳於世。後二百年。余按節到是州。適得其所爲詩耘谷集。雖所紀不多。與向所聞異。要之不失爲特筆也… : 일찍이 듣자니 ‘원주 사람 원천석은 고려 말에 숨어 살며 책을 썼는데 우왕과 창왕이 신돈의 소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매우 자세히 썼으나 우리 왕조가 개국하자 문을 닫고 일생을 맞쳤으니, 그 맑은 기풍과 높은 절개는 바로 포은과 야은 같은 여러 학자와 견줄 만하다. 그러나 그 자손이 오래도록 그 저서를 비밀이 간직하여 그것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리하여 그의 이름과 저서가 동시에 세상에 전하지 않고 없어지고 말았다.’ 하는 내용이었다. 200년이 지난 오늘날 마침 내가 이 고을에 관찰사로 부임하여 그가 쓴 <운곡집>이라고 쓴 시집을 얻어 내었는데 기록한 시가 많지 않고 또 그 동안에 듣던 소문과 다른 점이 많았으나 요약해 보면 특기할 만한 내용은 가지고 있었다.…』

      그 후 1630년에 발간한 신흠申欽선생의 문집 <상촌집>에도 앞의 내용과 비슷한 말을 쓰고 운곡선생의 시를 여러 수 들었는데 그분 역시 뜻이 잘 통하지 않는다고 하고 시구를 여러 군데 고쳐놓았다. 곧 앞의 일화와 같이 우왕 창왕이 왕씨 자손이라는 관점에서 글을 끌고 갈려고 글자를 바꾸어 보았으나 뜻이 연결이 안 된다는 말일 것이다.

      이러한 운곡선생의 일화는 시집에 나타난 사실과 괴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증폭되어 33년 뒤인 현종 4년(1663년) 강원도 진사 한용명韓用明 등이 상소를 올려 이조 개국 후에 태종대왕께서 잠저시潛邸時에 운곡선생에게 글을 배웠으므로 등극후 어가를 몰아 운곡선생을 찾아 갔으나 만나지 못하였는데 태종이 머물 던 장소가 태종대太宗臺라는 명칭으로 내려오므로 원주의 유생들이 원주 칠봉산 아래 칠봉서원을 지었는데 서원의 사액賜額을 내려 달라고 한 사실이 실록에 실렸다. 또 숙종29년(1703년)에는 직제학 원호元昊를 원천석의 사당에 합향하라는 교지가 내린 사실이 실록에 전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여러 과정과 제문 배향配享 등의 사실을 <운곡시사>와 한데 엮어 정조 24년(1800년) <운곡행록耘谷行錄>이 발간된다.

    그래서 나는 ‘진신서불여무서盡信書不如無書’라고 한 맹자孟子의 말이 생각난다. 우리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이렇게 정사와 야사가 혼동되어 마침내 정사처럼 굳어지는 경우를 많이 발견한다. 예로 들어보면 저 진주 기생 논개論介에 대하여서는 유몽인 선생이 쓴 <어우야담>에 처음 등장하고 실록이나 역사에는 없는 인물이나 지금 사람들에게는 실존인물이 아니라고 하면 도로 이상할 정도로 사실화 되었다.

      그럼 여기서 번역원에서 번역한 <상촌집>에 실린 원천석 선생 시 인용부분을 여기에 인용하여 문제되는 점만 풀어보겠다.

      『원천석(元天錫)은 고려 사람이다. 공민왕(恭愍王) 때에 벼슬하지 않고 원주(原州)에 살면서 목은(牧隱)과 그 밖의 여러 노인들과 서로 왕래하였다. 그의 유고(遺稿) 속에서 후세에서 알지 못하는 당시의 사적을 직필(直筆)로 기록해 놓은 것이 있으니, 신우(辛禑)를 공민왕의 아들이라고 한 것은 그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것이다. 그때 원천석은, ‘주상전하(主上殿下)께서 강화(江華)로 옮겨 가고, 원자(元子)가 즉위했다는 말을 듣고 느낌이 있어서. 라는 제목으로 두어 수를 지었으니,

    성현이 서로 만나 당시에 바뀌니 / 聖賢相遇遞當時

    천운이 돌고 도는 것 이제부터 알겠구나 / 天運循環自此知

    야인이라고 어찌 나라 걱정 없으리 / 田畝豈無憂國意

    다시금 충성된 마음 안고 안위를 생각하네 / 更彈忠懇念安危

    하였고, 또,

    새 임금 나오고 옛 임금 옮겨 가니 / 新主臨朝舊主遷

    쓸쓸한 바다 고을 바람과 연기뿐이로세 / 蕭條海郡但風煙

    천관의 바른 길을 누가 열고 닫는가 / 天關正路誰開閉

    밝고 밝은 전감이 눈앞에 있음을 알아야지 / 要見明明鑑在前

    하였다. 』

      *이 시에서 우왕이 신씨의 자식인지 왕씨 자식인지 낌새를 알만한 내용은 단 한자도 없다. 그 저 첫째 연은 어진 왕과 훌륭한 신하가 만나 이렇게 구주가 떠나게 된 것을 서술하였고, 둘째 연은 작자가 백성으로서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을 적었으며, 셋째 연은 새 임금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바닷가로 떠난 처량한 모습을 그렸고, 넷째 연은 바른 길로 통하는 문은 하늘이 열고 닫으니 그 앞날을 알려면 앞 시대의 역사의 교훈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여기서 본인 생각으로는 그래도 한 나라의 임금이 교체되는데 아무리 부자간의 교체라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세력에 의하여 나고 드는 것을 마치 여관에 숙박한 나그네가 다음 손님에게 방을 내어 주고 떠나는 듯한 가벼운 느낌으로 적었으니 아마도 당시의 상황은 이성계일파에게로 넘어간다는 사실을 예견하고 또 그것을 당연시 한 듯한 느낌이 든다. 또 구주가 신씨라고 쫓아냈다면 그 아들 신주는 신씨가 아니라는 말인가?

      그리고 이글에서 주목할 구절은 첫째 ‘聖賢相遇’이다. 여기서 성현은 우리 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훌륭한 사람으로 보아서는 아니 된다. 성스러운 군주와 훌륭한 신하가 서로 만나 한 시대를 교체 시켰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성은 신주新主이고 현은 당시 신주를 옹립한 재상 곧 이성계일당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다음은 ‘天關正路’ 이다. 관關은 문이라는 뜻과 빗장 곧 자물쇠라는 뜻이 있으니 ‘정로로 통하는 문을 누가 열고닫을 것인가?’ 라는 뜻이 된다. 여기서도 은연 중에 왕씨의 기운이 쇠퇴하였으니 새 기운이 들어올 정로를 역사의 거울로 살펴보라는 뜻이 될 것이다.

    이밖에 도통사 최영崔瑩 장군의 죽음에 대한 시는 최영장군의 충절을 애석히 여긴 것이고 목은선생의 귀양에 대한 시도 사우師友의 피참被讒을 안타까이 생각한 것이지 왕씨 고려에 대한 특이한 뜻이 부여된 것은 없다. 참고로 목은보다 운곡이 두 살 적다. 그러나 목은은 아주 일찍 벼슬길에 들어 섰으므로 운곡이 매우 존경한 듯하다.

      그리고 우왕창왕의 폐위와 죽음에 대하여서는 본인이 지난 번 <운곡선생시 몇편>에 문제점까지 제시하였으니 새삼 더 말할 게 없다.

      마지막으로 상촌선생의 결론적인 말을 아래에 인용하여 보았다.

     『시(詩)의 어조는 비록 질박하여 말이 안 되는 곳이 많지만 사실을 바르게 쓰고 숨기지 않았으니, 정인지의 《고려사(高麗史)》에 비교하면 일성(日星)과 무지개처럼 현격하게 달라서 읽으면 눈물이 몇 줄 흘러내린다. 대개 고려가 망한 것은 무진년(1388년) 폐주(廢主)로 말미암은 것이다. 목은(牧隱) 같은 이들이 그래도 일맥(一脈)을 유지하여 공의(公議)가 아주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때 정도전ㆍ윤소종의 무리들이 왕씨(王氏)가 아니라고 하는 자는 충신이 되고, 왕씨라고 말하는 자는 역적이 된다는 말을 만들어서 조정에서 떠들어 인심을 현혹시켜 드디어 선비들을 죽이고 사람들의 입을 막아 겨우 5년 만에 나라가 망했다. 그러니 그 시대에 태어나서 정직하게 자기의 주장을 세운 자는 그 생활의 괴로움이 어떠했겠는가. 그러나 인심을 다 현혹시키지는 못하고 사람의 입을 다 막지는 못해서 시골구석에도 이처럼 두려워하지 않고 바르게 쓰는 동호(董狐) 같은 직필이 있었으니, 어찌 돌이 누르면 죽순이 비스듬히 나온다는 것이 아니리오.』

    ---윗글의 원문---

    ‘詩語雖質朴多不成語。而事則直書無隱。比之麟趾之麗史。不啻日星螮蝀之相懸。讀之淚數行下。大抵麗之亡。由於戊辰之廢主。廢主之後。如牧隱儕流尙存。一脈公議未泯。故其時道傳,紹宗等輩倡爲非王氏者爲忠。謂王氏者爲逆之論。簧鼓朝廷。眩惑人心。遂得以魚肉士流。箝制口舌。僅五年而國亡矣。生乎其時而正直自樹者。其爲生辛苦顚沛當如何也。然而人心未盡眩。人口未盡箝。草野之間。有此董狐之筆。豈非石壓筍斜出者耶’。

      본인은 이 글을 보면서 지난 이씨 조선의 당파싸움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지 않았을까? 또 수백 년 동안 논난論難되어온 주자학의 이기론理氣論도 이런 것이 아닐까? 누가 ‘이기일원理氣一元’을 주장하면 그 추종자는 모두 그 이론이 맞다고 하고, ‘이기이원理氣二元’을 주장하면 그 반대 학자는 그 합리성을 따지기 전에 선입견先入見을 가지고 반대하게 된다. 한유韓愈가 말한 바와 같이 ‘기욕문인의도덕지설, 숙종이청지其欲聞仁義道德之說, 孰從而聽之 : 아무리 인의와 도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려고 하나 누구를 따라 뜯겠는가?’와 같이 되어 반대자는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까지 몰리게 되었다. 한 마디로 말하여 ‘우리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였는데 누가 감히 반대를 해.’하는 식이 당파싸움의 본질이 된 것이다.

      여기 운곡선생 이야기는 앞서 학자들이 우왕 창왕을 신돈의 자손이라고 하여 죽인데 대하여 새 왕조 곧 이씨조선 개국의 부당성을 고발하였다고 몰아갔었는데 어느 시기에 갑자기 이씨 조선개국의 중추역을 한 태종의 스승이 되어 서원까지 세우게 되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과연 그 진실을 ‘숙종이청지’ 해야 할까? 새삼 한유의 다음 말이 생각난다.

    “佛者曰, 孔子吾師之弟子也, 爲孔子者, 習聞其說, 樂其誕而自小也, 亦曰, 吾師亦嘗云爾,”
      본인은 운곡선생의 행적을 상고하다가 문득 광문의 신드롬이 생각나서 여기 끌어들였는데 혹시라도 지나치다고 생각하면
    망팔望八 늙은이 노망이 나서 헛소리한다고 생각하고 웃어넘기십시오. 그런 중에 작은 건더기라도 하나 건졌다고 하면 더욱 좋고 …


                                                                  북한산 노적봉

    by rkdmsaus | 2009/10/28 20:28 | 고인들의 시화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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