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 . 조면희 당시감상 위응물韋應物편 우풍저遇馮著 당시삼백수감상


240 . 조면희 당시감상 위응물韋應物편 우풍저遇馮著

. 조면희 <당시삼백수> 고시편

(). 오언고시五言古詩 중에서

 

27. 장안우풍저長安遇馮著

作者 : 위응물韋應物

 

객종동방래의상파릉우

客從東方來衣上灞陵雨

 

문객하위래채산인매부

問客何為來采山因買斧

 

명명화정개양양연신유

冥冥花正開揚揚燕新乳

 

작별금이춘빈사생기루

昨別今已春鬢絲生幾縷

 

장안에서 풍저를 만남

 

자네 동쪽 지방 패릉에서 왔지,

장안 교외의 비가 옷에 묻었군.


그런데 무엇 하러 여기에 왔나?

산에 나무베는 도끼 사러 왔네.

 

몰려오는 빗속에 꽃 활짝 피고,

펄펄 날아온 제비는 알을 까지.

 

작년에 헤어졌는데 벌써봄이야,

귀밑 털이 몇 가닥이나 세었군?

 

*감상

. 내용 : 작자와 풍저의 관계를 연구한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작자는 장안의 동쪽 교외 패릉 지방에 은거하는 친구 풍저를 1년 만에 만나 풍저의 머리칼이 몇 가닥 센 것을 보며 은근히 헛된 세월만 보내며 숨어살지 말고 벼슬길에 도전하기를 바라는 시를 풍자적으로 썼다고 함. 봄비 내리고 꽃 피고 새 나는 봄날을 맞아 다시 숨어살지 말고 세상에 나와 벼슬길에 도전해 보라는 의미가 숨어 있음을 보인 시.

 

. 형식 : 측성인 상성上聲 7를 압운한 전체 8구의 오언고시임.

 

*낱말

1、패릉灞陵패릉霸陵으로 장안 동쪽 교외에 있는 한문제의 능을 일컬으나 여기서는 패릉이 있는 산을 가리킴.

2、명명冥冥비 내릴 때 어둑어둑한 모양.

3、연신유燕新乳제비가 새로 알을 낳는 것.

 

*작자소개

위응물(韋應物 737~ 792) : 경조京兆 사람으로 당()나라 때의 관리이자 시인이다. 15세에 삼위랑三衛郎이 되어 현종玄宗을 가까이서 모셨다.

 

위응물은 대종 광덕(廣德) 2년인 764년부터 덕종 정원 7년인 791년까지, (, 후베이성 내)현령, 원외랑(員外郎), 저주(滁州, 지금의 안후이(安徽)성 추저우시) 자사, 강주(江州, 지금의 충칭(重慶)) 자사, 좌사낭중(左司郎中), 소주(蘇州, 지금의 장쑤성 쑤저우시)자사 등 여러 벼슬을 역임했는데, 거의 30년간 대부분의 시간을 도성 장안(長安, 지금의 시안(西安))이 아닌 지방 관사에서 보냈다. 세간에서는 그를 위소주(韋蘇州)’, ‘위좌사(韋左司)’라고 불렀다.

 

덕종 정원(貞元) 7년인 791년에 소주자사의 임기가 끝나 퇴직한 그는 새로운 임무를 받지 못했고 생활에 쪼들렸는데, 장안으로 돌아갈 여비도 없어서 소주의 무정사(無定寺)에서 기거하다가 다음 해에 55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네이버 지식백과]--인용


239 . 조면희 당시감상 위응물韋應物편 기전초산寄全椒山 당시삼백수감상


239 . 조면희 당시감상 위응물韋應物편 기전초산寄全椒山

. 조면희 <당시삼백수> 고시편

(). 오언고시五言古詩 중에서

 

26. 기전초산중도사寄全椒山中道士

作者 : 위응물韋應物

 

금조군재랭홀념산중객

今朝郡齋冷忽念山中客

 

간저속형신귀래자백석

澗底束荊薪歸來煮白石

 

욕지일표주원위풍우석

欲持一瓢酒遠慰風雨夕

 

낙엽만공산하처심행적

落葉滿空山何處尋行跡

 

전초산중에 숨어사는 도사에게 부쳐 보냄.

 

오늘 아침에 군청 방이 쓸쓸하여,

문득 산에 사는 도사가 생각났네.

 

개울 가에 나가 가시나무 베어와,

불을 때어 흰 돌들을 구워먹겠지.

 

한 표주박의 술이라도 들고 가서,

비바람 치는 저녁에 권하고 싶네.

 

하지만 낙엽이 산에 덮여 있으니,

어디 가서 그가 간곳을 찾겠는가?

 

 

*감상

. 내용 : 날씨가 싸늘한 가을 아침에 문득 전초산중에 숨어 도를 닦는 친구 생각이 났다. 시인의 생각에는 아마도 그 친구가 이 쓸쓸한 아침에도 산골짜기 개울가에 나가 가시넝쿨을 거두어 와서 불을 때어 옛날 신선이 먹었다는 흰 돌을 구워 먹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에 술이라도 한 병 들고 가서 그를 위로해 주고 싶으나 가을 낙엽이 온통 산에 가득 찼으니 갈 길을 찾을 수 없음을 안타까워함.

 

. 측성으로 입성入聲 11 을 압운한 전부 8구의 오언 고시.

*낱말

1. 군재郡齋저주자사滁州刺史의 청사 중에 재사齋舍

. 백석白石 : 신선이 흰 돌을 구워서 양식으로 삼았다는 전설에서 나온 말로 청고淸苦한 생활을 뜻함. 출전 :신선전(神仙傳)

3. 재사齋舍 : (1). 생활하는 방[家居的房舍] (2). 학생들이 공부하는 방 곧 학사學舍

 

*작자소개

위응물(韋應物 737~ 792) : 경조京兆 사람으로 당()나라 때의 관리이자 시인이다. 15세에 삼위랑三衛郎이 되어 현종玄宗을 가까이서 모셨다.

 

위응물은 대종 광덕(廣德) 2년인 764년부터 덕종 정원 7년인 791년까지, (, 후베이성 내)현령, 원외랑(員外郎), 저주(滁州, 지금의 안후이(安徽)성 추저우시) 자사, 강주(江州, 지금의 충칭(重慶)) 자사, 좌사낭중(左司郎中), 소주(蘇州, 지금의 장쑤성 쑤저우시)자사 등 여러 벼슬을 역임했는데, 거의 30년간 대부분의 시간을 도성 장안(長安, 지금의 시안(西安))이 아닌 지방 관사에서 보냈다. 세간에서는 그를 위소주(韋蘇州)’, ‘위좌사(韋左司)’라고 불렀다.

 

덕종 정원(貞元) 7년인 791년에 소주자사의 임기가 끝나 퇴직한 그는 새로운 임무를 받지 못했고 생활에 쪼들렸는데, 장안으로 돌아갈 여비도 없어서 소주의 무정사(無定寺)에서 기거하다가 다음 해에 55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네이버 지식백과]--인용


238 . 조면희 당시감상 위응물韋應物편 초발양자初發揚子 당시삼백수감상

238 . 조면희 당시감상 위응물韋應物편 초발양자初發揚子

. 조면희 <당시삼백수> 고시편

(). 오언고시五言古詩 중에서

 

25. 초발양자기원대교서初發揚子寄元大校書

作者 : 위응물韋應物

 

처처거친애범범입연무

凄凄去親愛泛泛入煙霧

 

귀도락양인잔종광릉수

歸棹洛陽人殘鐘廣陵樹

 

금조위차별하처환상우

今朝為此別何處還相遇

 

세사파상주연회안득주

世事波上舟沿洄安得住

 

양자강에서 배 타고 떠나면서 교서관인 원대에게 보냄.

 

사랑하는 벗과 쓸쓸히 작별한 뒤,

배를 타고 안개 속으로 들어갔네.

 

노 저어 낙양으로 돌아가는 사람,

광릉 나무숲에 걸린 종소리 듣네.

 

오늘아침 우리 이렇게 이별한 뒤,

어디가서 또 자네를 만나 볼는지.

 

세상 일 물결 위에 뜬 배 같은데,

흐르는 물을 어찌 머무르게 하랴?



*감상

. 내용 : 이 작품은 시인 위응물이 관덕원년(763)에 낙양승洛陽丞에 임명되어 광릉廣陵을 떠나 낙양으로 부임하는 도중에 친구인 교서랑 원대元大와 헤어지면서 석별의 정을 시로 읊어 보낸 작품임.

이시의 특징은 청각적 종소리를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한 멀리서 은은히 들리는 종소리를 광릉 나무숲에 걸린 것으로 표현한 점이다

 

. 형식 : 측성으로 거성去聲7를 압운한 전체 8구의 오언고시.

 

*낱말

1、친애親愛사랑하는 벗

2、잔종殘鐘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광릉에서 어슴푸레 들려오는 종소리.

3、연회沿洄순류로 흐르다가 거슬러 흐르기도 함.

 

*작자소개

위응물(韋應物 737~ 792) : 경조京兆 사람으로 당()나라 때의 관리이자 시인이다. 15세에 삼위랑三衛郎이 되어 현종玄宗을 가까이서 모셨다.

 

위응물은 대종 광덕(廣德) 2년인 764년부터 덕종 정원 7년인 791년까지, (, 후베이성 내)현령, 원외랑(員外郎), 저주(滁州, 지금의 안후이(安徽)성 추저우시) 자사, 강주(江州, 지금의 충칭(重慶)) 자사, 좌사낭중(左司郎中), 소주(蘇州, 지금의 장쑤성 쑤저우시)자사 등 여러 벼슬을 역임했는데, 거의 30년간 대부분의 시간을 도성 장안(長安, 지금의 시안(西安))이 아닌 지방 관사에서 보냈다. 세간에서는 그를 위소주(韋蘇州)’, ‘위좌사(韋左司)’라고 불렀다.

 

덕종 정원(貞元) 7년인 791년에 소주자사의 임기가 끝나 퇴직한 그는 새로운 임무를 받지 못했고 생활에 쪼들렸는데, 장안으로 돌아갈 여비도 없어서 소주의 무정사(無定寺)에서 기거하다가 다음 해에 55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네이버 지식백과]--인용




寓慕碑(우모비) 유용한 자료

寓慕碑(우모비)

豐壤趙氏副尉公派(풍양조씨부위공파)

時祭奉行壇(시제봉행단)

 

寓慕碑者,寓慕祖先之義也.吾先祖贈判書花川公諱濈,曾因從學西厓柳成龍相公,往還京師時,后配贈貞夫人完山李氏與其二子二女,寓居咸昌,而其子諱汝松,仁祖反正時錄勳靖社原從功臣三等,特賜展力副尉,孫諱煌例受通德郞職,而其後移住此地十數代,四百有餘年間,子孫蕃衍,然幾經戰亂以後,社會急變,子孫離鄕圖生,不能常時省墓燒香,故自壬辰年以後,會于一處奉行時祭,到今場所狹少,竊念變通之策,吾祖考博士公諱甫衍,亦追慕花川公晩松亭而肯構晩翠亭,故亭之前,設壇樹碑,以供奉行之所,則先意後慮恐副兩便,故敢設碑壇,敬呈于副尉公宗會,公之後孫毋論誰某皆設祭奉行爲望也.

 

戊戌年 春

贈吏曹判書花川公 14代孫 溶熙 謹設碑壇. 親弟 冕熙 謹撰碑文


우모비

풍양조씨부위공파

시제봉행단 

 

우모비는 선조를 추모하는 마음을 깃들게 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우리 선조 증판서화천공 휘 즙은 일찍이 서애유성룡상공을 스승으로 삼아 종유하며 서울에 오고갈 때 후배後配이신 증정부인은 그 두 아드님과 두 따님을 데리고 함창에 우거하게 되었다. 그러다 그 아드님 휘 여송이 인조반정 당시 정사원종공신 삼등에 녹훈 되어 전력부위 직위를 특사 받았고 손자 황은 공신 자손에게 주는 예규에 따라 통덕랑의 직위를 받았다.

  이곳으로 이주한 뒤 열 두어 세대, 사백여년 간 집성촌으로 자손이 번성하였으나 전란을 몇 번 겪고 난 뒤 사회가 급변하게 되어 자손들이 고향을 떠나 생계를 꾸려가다 보니 늘 흩어져 있는 산소들을 찾아 시제를 드릴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난 2012년 이후 한 곳에 모여 시제를 봉행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자손이 많이 모여 장소가 협소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변통할 계획을 생각다보니 나의 조고이신 박사공 휘 보연께서도 화천공의 만송정을 추모하여 만취정을 지으셨으니 이 정자 앞에 단을 설치하고 비를 세워 시제장소로 제공한다면 조고의 뜻과 우리 후손의 염려가 다 부합될 것 같아 감히 비와 단을 세우고 부위공 종회에 경건히 드리니, 부위공의 자손은 누구나 다 여기서 시제를 봉행하기 바란다.

 

2018년 봄에

증이조판서화천공 14대손 용희는 삼가 비와 단을 설치하고.

                                   아우 면희는 삼가 비문을 지음.





                                                 우모비 세울 장소 만취정 좌측  출입 층층대 곁



*위 공사는 2018.04.15.가지 완공 예정임.


2018. 5.10. 현재 왕공된 우모비 동영상

 



237 . 조면희 당시감상 위응물韋應物편 송양씨녀送楊氏女 당시삼백수감상

237 . 조면희 당시감상 위응물韋應物편 송양씨녀送楊氏女

. 조면희 <당시삼백수> 고시편

(). 오언고시五言古詩 중에서

 

24. 송양씨녀送楊氏女

作者 : 위응물韋應物

 

영일방척척출문부유유

永日方戚戚出門復悠悠

 

여자금유행대강소경주

女子今有行大江溯輕舟

 

이배고무시무념익자유

爾輩苦無恃撫念益慈柔

 

유위장소육량별읍불휴

幼爲長所育两别泣不休

 

대차결중장의왕난부류

對此结中腸義往難復留

 

자소궐내훈사고이아우

自小闕内訓事姑贻我懮

 

뢰자탁령문임휼서무우

赖兹托令門任恤庶撫尤

 

빈검성소상자종기대주

貧儉誠所尚資從豈待周

 

효공준부도용지순기유

孝恭遵婦道容止顺其猷

 

별리재금신견이당하추

別離在今晨见爾當何秋

 

거한시자견임감홀난수

居閑始自遣臨感忽難收

 

귀래시유녀영루연영류

歸来视幼女零淚緣纓流

 

양씨 집안에 딸을 시집보내며

 

종일토록 내 마음이 쓰리고 아파,

집을 나서보나 슬픔만 더 커지네.

 

딸 아이 오늘 시집으로 떠나는데,

작은 배로 강물 거슬러 올라갔지.

 

너희자매 일찍 어머니를 여의어,

너무 애틋한 마음으로 길렀었다.

 

어린 아우를 언니가 길러줬으니,

자매 손잡고 끊임없이 흐느끼네.

 

이를 보자니 가슴이 메어지지만,

시집가는 딸을 붙들 순 없는 일.

 

어릴 때 여자 도리 못 가르쳐서,

시부모 섬기는 일 걱정스러웠다.

 

다행히 좋은집 가문에 보냈으니,

잘 돌보아서 허물없기를 바란다.

 

청빈과 검소는 내생애 신념이니,

신부 갖출물건도 제대로 못줬다.

 

공경과 효도로 신부도리 다하고,

행동과 용모로 시댁규칙 따라라.


오늘 이른새벽 너를 이별했으니,

언제쯤에나 너를 다시 보게될지.

 

처음엔 보내면 된다 생각했는데,

막상 떠나니 정신이 아득해진다.


돌아와 어린 딸아이를 바라보며,

갓끈과 옷깃 눈물에 젖고말았네.

 

*감상

. 내용

시인은 일찍이 상처를 하고 어린 두 딸을 길렀는데 큰 딸을 시집보내며 느끼는 애틋한 감정을 실감나게 표현하였음.

곧 시인은 딸을 시집보내는 날 종일 울적한 감정을 가졌는데 그 중에 딸이 먼 강물의 상류에 있는 시댁으로 떠날 때의 순간순간 감정, 그리고 그 딸에게 바라는 마음과 집에 남아있는 작은 딸의 슬픔을 토막토막 잘라서 표현하고 마지막으로 딸과 이별한 뒤에 집에 돌아와 어린 딸을 보며 체면도 잊고 눈물이 의관을 적시며 흐름을 진솔하게 표현했음.

 

. 형식 : 하평성 11 를 압운한 전체 24구의 오언고시.

 

*낱말

1. 양씨녀楊氏女양씨 집안으로 시집가는 딸의 뜻

2. 영일永日온 종일

3. 시집감을 뜻함.

4. 유유悠悠아득하다. 멀다의 뜻

5. 이배爾輩너희들곧 두 딸

6. 의 뜻으로 어긋났다는 뜻.

7. 내훈内訓어머니의 가르침.

8. 영문令門좋은 집안의 뜻.

9. 자종資從신부가 가지고 가야할 폐물이나 화장품등 소지품.

 

*작자소개

위응물(韋應物 737~ 792) : 경조京兆 사람으로 당()나라 때의 관리이자 시인이다. 15세에 삼위랑三衛郎이 되어 현종玄宗을 가까이서 모셨다.

 

위응물은 대종 광덕(廣德) 2년인 764년부터 덕종 정원 7년인 791년까지, (, 후베이성 내)현령, 원외랑(員外郎), 저주(滁州, 지금의 안후이(安徽)성 추저우시) 자사, 강주(江州, 지금의 충칭(重慶)) 자사, 좌사낭중(左司郎中), 소주(蘇州, 지금의 장쑤성 쑤저우시)자사 등 여러 벼슬을 역임했는데, 거의 30년간 대부분의 시간을 도성 장안(長安, 지금의 시안(西安))이 아닌 지방 관사에서 보냈다. 세간에서는 그를 위소주(韋蘇州)’, ‘위좌사(韋左司)’라고 불렀다.

 

덕종 정원(貞元) 7년인 791년에 소주자사의 임기가 끝나 퇴직한 그는 새로운 임무를 받지 못했고 생활에 쪼들렸는데, 장안으로 돌아갈 여비도 없어서 소주의 무정사(無定寺)에서 기거하다가 다음 해에 55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네이버 지식백과]--인용



236 . 조면희 당시감상 위응물韋應物편 군재우중郡齋雨中 당시삼백수감상

236 . 조면희 당시감상 위응물韋應物편 군재우중郡齋雨中

. 조면희 <당시삼백수> 고시편

(). 오언고시五言古詩 중에서



23. 군재우중여제문사연집郡齋雨中與諸文士燕集

作者 : 위응물韋應物

 

병위삼화극연침응청향

兵衛森畫戟燕寢凝清香

 

해상풍우지소요지각량

海上風雨至逍遙池閣涼

 

번아근소산가빈부만당

煩痾近消散嘉賓復滿堂

 

자참거처숭미도사민강

自慚居處崇未睹斯民康

 

이회시비견성달형적망

理會是非遣性達形跡忘

 

선비속시금소과행견상

鮮肥屬時禁蔬果幸見嘗

 

부음일배주앙령금옥장

俯飲一杯酒仰聆金玉章

 

신환체자경의욕릉풍상

神歡體自輕意欲淩風翔

 

오중성문사군언금왕양

吳中盛文史群彥今汪洋

 

방지대번지기왈재부강

方知大藩地豈曰財賦強

군청재사에서 빗속에 여러 문인들과 잔치를 베풂

 

병사들 호위로 의장기 숲이되고,

잔치 자리엔 맑은향기 엉기었네.

 

바다에서 비바람이 몰아 왔지만,

연못 가 군청 재사 서늘해 좋군.

 

더위에 찌든병은 이제 사라지고,

귀한 손님들 이 자리에 꽉 찼네.

 

내가 거처하는곳이 너무 높아서,

백성들 생활을 못보아 부끄럽군.

 

이치를 따지어 시비를 풀어주고,

탁트인 성격으로 신분 잊으려네.

 

생선이나 고기는 금식에 속하나,

채소 과실은 먹을 수 있어 좋아.

 

허리 구부려서 술 한 잔 마시고,

머리 들어 귀한 시문 낭송 듣네.

 

마음이 기쁘니 몸이 절로가벼워,

바람타고 훨훨 날아가고 싶어라.

 

이 소주지방엔 문장가가 많은데,

훌륭한 선비들 지금더욱 왕성해.

 

이제야 알겠다. 이 큰 고을에서,

풍부한 재물만 자랑할수 없음을.

 

 

*감상

. 내용 : 소주 고을 원님[蘇州刺史]의 청사에 잔치를 베푸는데 황제로부터 하사받은 그림 조각이 된 창을 비롯하여 위장기가 숲을 이루었고 청사 안에는 향불 피워 좋은 향기 가득 찼다. 게다가 바다로부터 시원한 비바람이 몰려오니 연못을 낀 누각에 서늘한 가을기운이 감돈다. 이리하여 여름동안 지루하던 열기와 더위 병이 모두 물러가고 귀한 손님들이 자리에 가득 모였다.

그 동안 부끄러운 것은 원님이 거처하는 청사가 너무 높고 화려하여 백성들의 안녕을 직접보지 못한 것이니, 앞으로 이치를 잘 따져 백성의 옳고 그름을 분간해주고, 또 탁 트인 성격으로 나의 지위와 체면을 잊어버리고 백성에게 다가가려고 한다.

 

비린 생선이나 고기들은 이 때의 금령[시금時禁:시대의 금령. 곧 관청에서 잔치에 고기 접대를 금하였던 모양]이지마는 나물이나 과일은 실컷 맛보기 바란다.

 

나는 술 한 잔 쭉 들이마시고 여러분들이 금옥같은 시문 읊조리는 소리 들으니 나도 몰래 몸이 가벼워져 바람을 타고 훨훨 날아갈 듯하

.

 

소주라는 이 고을은 지역이 커서 세금을 거둘 물산만 많이 나는 것이 아니고 준수한 인물들이 많이 남을 깨달았다.

 

. 형식 : 하평성 7 을 압운한 전체 20 구의 오언고시.

 

*낱말

1. 군재郡齋소주자사 관청 재사齋舍

2. 연침燕寝본래 휴식하고 잠자는 침실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군청재사를 말함.

3. 해성海上소주 고을 동쪽에 있는 바다

4. 번가烦疴여름 더위로 인한 질병

5. 시금時禁당시 국가명령으로 관청의 잔치에 고기 먹는 일을 금하였던 듯.

6. 오중吳中소주가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이었으므로 오중이라고 불려 옴.

7. 대번大藩큰 고을의 뜻.

8. 재부강财赋强안사난安史乱이 끝난 뒤에 동남지역인 소주와 항주가 중요한 세금원이었음.

 

*작자소개

위응물(韋應物 737~ 792) : 경조京兆 사람으로 당()나라 때의 관리이자 시인이다. 15세에 삼위랑三衛郎이 되어 현종玄宗을 가까이서 모셨고, 뒤에 경조부공조참군京兆府功曹參軍, 악현령鄂縣令, 제주자사滁州刺史, 등을 역임했다. 세간에서 위소주(韋蘇州)’로 일컬어진다. 그의 시풍은 고요하고 담박하면서 고원高遠했으며, 경치와 은일생활을 잘 묘사했다. 저서로 위강주집(韋江州集), 위소주시집(韋蘇州詩集)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인용



235 . 조면희 당시감상 유종원柳宗元편 계거溪居 당시삼백수감상


235 . 조면희 당시감상 유종원柳宗元편 계거溪居

. 조면희 <당시삼백수> 고시편

(). 오언고시五言古詩 중에서

 

22. 계거溪居

作者 : 유종원柳宗元

 

구위잠조속행차남이적

久為簪組束幸此南夷謫

 

한의농포린우사산림객

閒依農圃鄰偶似山林客

 

효경번로초야방향계석

曉耕翻露草夜傍響谿石

 

내왕불봉인장가초천벽

來往不逢人長歌楚天碧

 

시냇가에 살며

 

오랜 세월을 관직에 묶였다가,

남쪽으로 좌천된 게 다행일세.


농사꾼과 가까이할 수 있으니,

자연에 은둔한 선비와도 같네.

 

새벽으론 이슬맞은 풀도 뽑고,

밤엔 흐르는 개울소리도 듣지.


오가는 속된 사람 만나지않고,

이곳 푸른 하늘을 노래부르네.

 

 

*감상

. 내용 : 이 작품도 역시 806년 경 유종원이 남쪽 형초지방인 영주에 좌천되어 와서 살 때 지은 작품이다. 좌천이라고 하나 우리 나라의 유배생활과 마찬가지로 아무 실권도 없이 지방 관원의 감시를 받는 죄인에 가까운 처지이다. 그리하여 이곳 개울가에 집을 짓고 개울 이름을 우계愚溪라고 바꾸어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유배생활에서 그는 자연을 많이 읊었고 외면적으로는 생활의 자유분방함을 표현했으나 내면에는 답답한 정서도 숨어 있는 작품이 많다.

 

. 형식은 측성인 입성入聲 11 을 압운한 전체 8구의 오언고시.

 

*낱말

1. 계거溪居작자가 염계冉溪에서 살았으므로 계거라고 하였음. 작자가 영주사마永州司馬로 좌천되어 왔을 때 여기에 집을 짓고 이 개울 이름을 우계愚溪라고 하였는데 지금 호북성 영주시湖南省永州市 동남에 있음.

2. 잠조簪组잠은 옛날 관리들의 관직모자 위의 장식. 조는 관인을 꿰어 허리에 차고 다니던 끈으로 관리를 뜻함.

3. 남이南夷남방 소수민족이 사는 지역으로 바로 영주를 가리킴.

4. 농포農圃전원. 여기서는 농민을 뜻함.

5. 산림객山林客은둔한 선비 곧 은사.

6. 장가長歌방가放歌

7. 초천楚天영주지방이 바로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지역이었음.

 

*작자소개

유종원柳宗元 : (773~819). 나라 때의 문인.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 자는 자후子厚. 산서 하동 사람. 고문古文 부흥운동을 주창主唱하였다. 한유韓愈와 더불어 육조六朝 이후 병려체騈儷體 문학의 정체停滯를 타개했음. 자연 묘사에 뛰어난 그의 시는 왕유王維에 버금간다고 전함. 저서에 유하동집柳河東集등이 있음.


234 . 조면희 당시감상 유종원柳宗元편 독선경讀禪經 당시삼백수감상

234 . 조면희 당시감상 유종원柳宗元편 독선경讀禪經

. 조면희 <당시삼백수> 고시편

(). 오언고시五言古詩 중에서

 

21. 신예초사원독선경晨詣超師院讀禪經

作者 : 유종원柳宗元

 

급정수한치청심불진복

汲井漱寒齒清心拂塵服

 

한지패엽서보출동재독

閒持貝葉書步出東齋讀

 

진원료무취망적세소축

真源了無取妄跡世所逐

 

유언기가명선성하유숙

遺言冀可冥繕性何由熟

 

도인정우정창색련심죽

道人庭宇靜蒼色連深竹

 

일출무로여청송여고목

日出霧露餘青松如膏沐

 

담연리언설오열심자족

澹然離言說悟悅心自足

 

새벽에 초사원 절에 가서 불경을 읽음

 

우물 길러다 시린 이 양치하고,

맑은 마음으로 옷 먼지 틀었네.

 

조용히 패엽경 책을 갖고 나와.

동쪽 재실에 가서 읽어 보았네.

 

사람들 진리는 찾지 아니 하고,

허망한 행적만 모두 따라 가네.

 

부처님 말은 따르기가 어려운데,
본성 닦으라는 말 어떻게익힐까?

 

도인의 집안 정원이 고요한 데,

푸른 이끼는 대숲에 이어 있네.

 

해 솟아나 이슬과 안개만 남고,

청솔은 머리 기름 바른 듯하네.

 

청정함은 말로 설명할 수없고,

마음 속 깨달음으로 만족하지.


  *감상

. 내용 : 이 시는 806년경 작자 유종원이 좌천되어 영주永州에 가 있을 때 지은 작품이다.

 

작자는 영주 용흥사龍興寺의 가니, 주지승 중손重巽이 정토원淨土院에서 좌선坐禪하고 있었는데 이 승려가 불도에 대하여 설명을 잘 하는 자이므로 그를 초사超师라고 불렀다. 곧 유종원은 그 스님을 스승으로 삼고 가끔씩 정토원에 들러 불경을 빌려 읽고는 하였다.

 

유종원은 유교 사상가로써 불교를 이해하여 정치적인 앞길도 개척해 보려고 노력하였으나 모두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글의 내용을 보면 작자는 당시 세속 사람들은 불교의 참된 이치는 추구하지 않고 오로지 기이한 자취만을 믿으려고 하는 것을 비판 하였다. 곧 불교는 마음속으리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은연중 역설한 시임.

 

. 형식 : 측성중 입성入聲 1.을 압운한 전체 14 구절로 된 오언고시.


*낱말

1. 초사원超師院영주 용흥사의 정토원을 가리키며 초사超师는 주지승 중손重巽을 가리킴.

2. 패엽서貝葉書패서貝書라고도 하며 패다수貝多樹 잎에다가 불경을 썼기 때문에 패엽서는 불경을 뜻함. 옛날 인도 사람들은 이 패다수 잎에 불경을 기록하였음. 패다수를 패다라수貝多羅樹라고도 한다.

2. 동제東齋 : 정토원 동쪽에 있는 재방齋房 곧 재를 준비하는 방

3. 진원真源불교의 진리

4. 망적妄跡믿을 수 없는 허망한 자취

5, 유언遗言불경에 설명한 말

6. 선성缮性본성을 수양하는 것

7. 도인道人주지 승 중손重巽을 가리킴.

 

*작자소개

유종원柳宗元 : (773~819). 나라 때의 문인.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 자는 자후子厚. 산서 하동 사람. 고문古文 부흥운동을 주창主唱하였다. 한유韓愈와 더불어 육조六朝 이후 병려체騈儷體 문학의 정체停滯를 타개했음. 자연 묘사에 뛰어난 그의 시는 왕유王維에 버금간다고 전함. 저서에 유하동집柳河東集등이 있음.





233 . 조면희 당시감상 구위邱為편 심서산尋西山 당시삼백수감상

233 . 조면희 당시감상 구위邱為편 심서산尋西山

. 조면희 <당시삼백수> 고시편

(). 오언고시五言古詩 중에서

 

20. 심서산은자불우尋西山隱者不遇

作者 : 구위邱為

 

절정일모자직상삼십리

絕頂一茅茨直上三十里

 

고관무동복규실유안궤

叩關無僮僕窺室惟案几

 

약비건시거응시조추수

若非巾柴車應是釣秋水

 

차지불상견민면공앙지

差池不相見黽勉空仰止

 

초색신우중송성만창리

草色新雨中松聲晚窗裡

 

급자계유절자족탕심이

及茲契幽絕自足蕩心耳

 

수무빈주의파득청정리

雖無賓主意頗得清淨理

 

흥진방하산하필대지자

興盡方下山何必待之子

 

서산에 숨어사는 이를 만나러 갔으나 만지 못하고

 

높은 산 꼭대기에 띳집 한 채,

삼십리 길을 한다름에 올랐지.

 

문을 두드렸으나 아무도 없고,

틈새로 뵈는 방엔 책상뿐일세.


땔나무 수레로 외출 하였든지,

아니면 물가에 낚시를 갔나봐.

 

때를 잘 못 잡아 만나지 못해,

안타까이 서서 우러러 보았지.

 

내리는 빗속에 풀빛은 새롭고,

저녁녘 창문엔 솔바람 부딪네.

 

여기 그윽한 정취가 흡족하여,

내 마음 깨끗하게 씻어주었군.

 

주인생각 못 들은 나그네지만,

산속의 깨끗한 이치 터득했네.

 

감흥 다얻어서 산을 내려가니,

주인 꼭만나야할 필요 있을까?

 

 

*감상

. 내용 : 구위丘爲는 당나라 때 시인이나 전해지는 작품이 많지 않다. 다만 이 작품만은 은자隱者의 정서를 표현한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두 부분으로 앞부분 8구는 은자를 찾아가 못 만난 상황을 표현하고 뒷부분인 8구는 시인이 은자의 정취와 한가한 생활을 충분히 만끽한 뒤에 스스로 만족하며 돌아오는 정서를 읊었음.

 

. 형식 : 측성인 상성上聲 4를 압운한 전체 16구의 오언고시.

 

*낱말

1. 모자茅茨띳집[모옥茅屋 : 초옥草屋]

2. 동복僮僕심부름꾼 아이나 종

3. 안궤案几책상이나 궤짝

4. 건시거巾柴車 초라하고 작은 수레

5. 추수秋水추수담秋水潭이라는 못 이름.

6. 치지差池원래 쪽 고르지 못 함을 뜻하나 여기서는 길이 어긋났음을 표현함.

7. 민면黽勉애써서의 뜻.

8. 지자之子그 사람의 뜻.

 

*작자소개

구위邱為 : 소주 가흥蘇州嘉興 사람. 계모繼母를 잘 섬겼는데 늘 영지靈芝가 마루 밑에서 나 자랐다고 함.

일찍이 태자석서자太子石庶子라는 관직을 역임했는데 나이 80여 세가 될 때까지 노모老母가 건재하였다고 함. 노모에 효성을 다하였다고 당시 사람들이 칭송하였으며 96세에 죽었다고 함. 출전 : 신당서新唐書예문지藝文志.


232 . 조면희 당시감상 맹호연孟浩然편 기정대期丁大 당시삼백수감상

232 . 조면희 당시감상 맹호연孟浩然편 기정대期丁大

. 조면희 <당시삼백수> 고시편

(). 오언고시五言古詩 중에서

 

19. 숙업사산방기정대불지宿業師山房期丁大不至

作者 : 맹호연孟浩然

 

석양도서령군학숙이명

夕陽度西嶺群壑倏已暝

 

송월생야량풍천만청청

松月生夜涼風泉滿清聽

 

초인귀욕진연조서초정

樵人歸欲盡煙鳥棲初定

 

지자기숙래고금후라경

之子期宿來孤琴候蘿徑

 

업사스님의 절간에서 정대를 만나기로 했으나 오지 않음.

저녁 해 서산봉우리 넘어 가고,

산골짜기는 어느새 어두워지네.

 

솔 위에 달은 서늘한 기운이고,

바람과 샘물 맑은 소리 들리네.


나무꾼들은 거의 다 돌아 가고,

새는 저녁연기 뚫고 둥지 찾네.

 

자네와 만날 약속한 절 앞에서,

거문고 타며 험한 길 바라보네.

 

 

*감상

.내용 : 이는 작자 맹호연이 산중에 있는 중 업사스님의 절간에서 친구 정대를 만나 하룻밤 묵기로 하였으나 저녁 어둠이 내릴 때까지 오지 않으므로 절 앞에 나와 산 아래 길을 향해 거문고를 타며 기다리는 심정을 읊은 시로 당시 주위 배경을 그림처럼 표현하였음.

 

. 형식 : 측성으로 거성去聲 25 을 압운한 오어고시.

 

*낱말

1. 업사業師법명이 업인 중의 뜻.

2. 산방山房 : 절을 가리킴.

3. 정대丁大작자의 친구 정봉丁鳳을 가리키지만 인적사항은 분명치 않음.

4. 연조煙鳥안개 노을 속에 돌아오는 새.

5. 지자之子그 사람의 뜻.

 

*작자 소개

맹호연孟浩然689740),이름이 호자는 호연浩然호가 맹산인孟山人현재 호북성 양양襄陽 사람. 그는 일찍이 벼슬을 하지 않았음. 당나라 때 저명한 산수전원파山水田園派 시인. 왕유王維와 장구령張九齡과 함께 망년지교를 맺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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