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18일
(168)양촌선생시 11수陽村先生詩 11首
양촌선생시 11수陽村先生詩 11首
작자作者 : 양촌 권 근陽村 權 近
번역飜譯 : 청계 조면희淸溪 趙冕熙
출전出典 :<양촌선생문집陽村先生文集>


[현암사] 온달이야기 외
신고
<一> 입직入直諫院--癸亥除夜。入直諫院--
야여연장진, 춘수루이생.
夜與年將盡。春隨漏以生。
거연첨갑자, 우차하원정.
居然添甲子。又此賀元正。
광직언하보, 무재로가경.
曠職言何補。無才老可驚。
천문미개쇄, 불매청계성.
千門未開鎖。不寐聽雞聲.
*해설 : 간원에서 숙직하며
--계해년(우왕9, 1383년. 32세) 제야(除夜, 섣달 그믐 밤)에 간원[司諫院]에서 숙직하며.--
한해는 오늘 밤과 함께 다 끝나려 하고
봄은 물방울시계를 따라 다가오고 있지.
어느 새 갑자년 새해, 나이가 보태지니.
또 이렇게 새해의 초하룻날을 축하하네.
간언의 직책 다 못해 무슨 도움 될까?
재주 없이 늙어만 감이 놀랍기만 하네.
아직 궁성의 문들 열리지 않았는데
잠 못 이루고 닭 우는 소리만 듣네.
<二> 무진년서북도종군작戊辰年西都從軍作
차부벽루시운次浮碧樓詩韻(摠5首 中 一首拔萃)
승일연안출곽유, 산전걸각부장류.
勝日連鞍出郭遊。山前傑閣俯長流。
연연원수평교외, 범범편주고도두.
娟娟遠岫平郊外。汎汎扁舟古渡頭。
천재번화상대사, 사시풍경기종휴.
千載繁華相代謝。四時風景豈終休。
등림창망동남구, 표묘연파송객수.
登臨悵望東南久。縹緲烟波送客愁。
*해설 : 무진년 (1388년, 우왕14, 37세) 평양지방으로 종군하여 가며 지은 작품
시제詩題 : 부벽루 시에 차운함. (총 5편중 1편 뽑음)
좋은날 줄지어 말 이끌고 성문을 나가니
산 앞에 웅장한 누각 긴 강물 위에 섰네.
넓은 들판 밖에는 산봉우리들 아름답고
옛 나루터엔 조각배들이 둥둥 떠 있네.
천년의 번화는 시대따라 바뀌어 왔지만
사시절의 풍경만은 쉬지 않고 순환하지.
누각에 올라 안타까이 동남 쪽을 바라보니
아득히 흐르는 물결 나그네 근심 실어가네.
<三> 용주로상龍州路上
--戊辰冬十月二十四日。奉西北面宣慰之命。龍州路上。時牧隱奉使朝京。--
상상조천청자행, 군왕사온위충성.
上相朝天請自行。君王賜醞慰忠誠。
나사원섭치천리, 불욕투안구일생.
那辭遠涉馳千里。不欲偸安苟一生。
새설삭풍취심렬, 해운잔일조유명.
塞雪朔風吹甚冽。海雲殘日照猶明。
공귀정포양춘택, 하행사민변태평.
公歸定布陽春澤。何幸斯民見大平。
*해설 : 용주로 가는 길에서
--무진년(1388년, 우왕14, 37세) 겨울 시월 이십사일 서북면선위사의 임명을 받고 용주로 가는 길에서. 당시 목은(이색)이 중국에 사신으로 조회하러 감.-
상상의 몸으로 중국 사행을 자청하여 가니
임금께서 술을 내려 그의 충성 위로하였네.
천리 먼 길 어렵다 한들 어떻게 사양하리?
일생을 구차스레 편함만 추구하지 않았네.
국경에 눈 내리고 북풍도 매섭게 부는데
바다 구름 사이로 지는 해가 밝게 비치네.
공께서 돌아오면 황제 은혜 나라에 펴리니
태평세월 만난 우리 백성 얼마나 다행하리.
<四> 홍무22년세재기사추팔월회일洪武二十二年歲在己巳秋八月晦。
<봉사록奉使錄>(一)
초팔일진가사연잉사初八日進謝賜宴仍辭。
효수군언입금문, 지척천위망지존.
曉隨羣彥入金門。咫尺天威望至尊。
풍송로연향만전, 운이선장일림헌.
風送爐烟香滿殿。雲移仙仗日臨軒。
송당사연은난사, 금폐사귀어갱온.
公堂賜宴恩難謝。禁陛辭敀語更溫。
주출액원유축적, 차심응시도가존.
走出掖垣猶踧踖。此心應是到家存。
*해설 : 홍무 22년(기사년, 창왕1. 1389년, 작자38세) 6월에서 11월까지 명나라 사신으로 갔을 때 쓴 <봉사록奉使錄>에서 뽑음
시제 : (8월)초여드렛날 대궐에 나아가 사연에 사은하고 곧이어 하직함.
새벽에 여러 선비 따라 천자의 대궐 들어가니
하늘 같은 위엄 가진 용안을 지척에서 뵈었네.
향로의 연기는 바람 따라 전각에 가득 차있고
구름 같은 의장기 따라 황제가 난간에 임했네.
공당에서 연회를 열어준 은혜도 너무 감사한데
다시 천자께서 말씀하신 작별인사도 따사로웠네.
궁전을 벗어나 밖으로 나와도 아직 얼떨떨하니
이러한 내 마음 집으로 돌아가도 그대로 있으리.
*낱말
1. 금문金門 : 천자의 구전 문.
2. 액원掖垣 : 궁전을 둘러싼 담장.
<봉사록奉使錄>(二)
聞十國(自注。秦,晉,燕,齊,楚,周,蜀,魯,湘,潭。)親王皆朝京師。
열작분모토, 인친비본지.
列爵分茅土。仁親庇本支。
부행봉건일, 사유회동시.
復行封建日。斯有會同時。
인지주종성, 용안한업희.
麟趾周宗盛。龍顏漢業煕。
소신문성미, 가영재성시.
小臣聞盛美。歌詠載成詩。
*해설 : 10개 국의 천자의 친척 왕들이 경사에 조회하러 왔다는 소식을 듣고.
자주 : 10국은 ‘진秦ㆍ진晉ㆍ연燕ㆍ제齊ㆍ초楚ㆍ주周ㆍ촉蜀ㆍ노魯ㆍ상湘ㆍ담潭.’임.
작위의 차례를 따라 나라 땅을 나누어 주니
사랑하는 친족끼리 본손과 지손을 보호하지.
제후를 봉하는 날을 다시 시행하자니
이와 같이 함께 모이는 때가 있다네.
훌륭한 황손들은 주나라처럼 번창하고,
천자의 높은 위엄 한나라처럼 빛나리.
하찮은 이 신하, 성대한 소식 듣고
노래로 찬양하고 시를 지어 읊었네,
*낱말
1.모토茅土 : 옛날 천자가 제후를 봉할 적에 그 지방의 방위색에 알맞는 색깔의 흙을 흰 띠에 싸서 나누어주면, 제후는 이 흙을 받아 사직단社稷壇을 만든 데서 나옴.
2.인지麟趾) : 인자한 황손皇孫이 많음을 말함.《시경》 주남 인지지麟之趾에서 나옴.
3.용안龍顔 : 황제의 얼굴을 말함. 한 고조漢高祖는 얼굴이 ‘코가 높고 용의 얼굴[隆準龍顔]’이라고 한데서 나옴.《사기 한고조본기史記 高祖本記》
<봉사록奉使錄>(三)
과압록강過鴨綠江
원유새북여천남, 금일사두우계참.
遠遊塞北與天南。今日沙頭又係驂。
학야만산청사대, 압강추수벽어람.
鶴野晚山靑似黛。鴨江秋水碧於藍。
고향루입객중몽, 이역종귀취후담.
故鄕屢入客中夢。異域終敀醉後談。
희청정위소식호, 불사배표이침감.
喜聽庭闈消息好。不辭杯杓已沈酣。
*해설 : 압록강을 건너며(9월, 돌아오는 도중)
멀리 국경의 북쪽과 남쪽지방 두루 구경하고
오늘 이 강가의 모래톱에 또 말고삐를 맸네.
학이 사는 요동 산은 석양에 눈썹처럼 푸르고,
오리 대가리처럼 푸른 강물은 쪽빛보다 진하네.
나그네 생활 중에 고향은 꿈속에 자주 보았으나
돌아간 뒤 이국 모습은 술취한 뒤 이야기거리지.
부모님 편히 계신 안부 반갑게 들었으니
권하는 술 사양치 않고 흠뻑 취해버렸네.
<五> 己巳仲冬晦。以言事竄牛峯。未閱月。國家代德。又爲臺評所貶。遠謫寧海。風霜辛勤。山水跋涉。可恠可愕
*해설 : 기사년(창왕1. 1389년, 38세,)년 11월 그믐에 말을 잘못한 빌미로 죄를 얻어 우봉으로 귀양갔으나 한달이 안 되어 나라의 국왕이 바뀜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또 대관의 탄핵[臺評]으로 멀리 영해지방으로 귀양 가게 되었는데 추위의 어려움과 험한 길의 곤궁한 상황은 놀라울 뿐이다. (이렇게 신미년인 1391년까지 2 년여를 귀양 생활하는 중에 쓴 수십 편의 시가 <남행록>인데 본인은 여기서 두어 편을 발췌했음)
<남행록南行錄>(一)
도익주到益州
洪武庚午夏五月。逮繫淸州。因有大水之警。蒙宥從便。未幾又被臺評。謫來益州。其夜大雷電以雨。明日記于壁上。時白露節後九日也。
서원당일수만천, 사생홍은이패연.
西原當日水漫天。肆眚洪恩已霈然。
차야익주뢰우급, 수련축객독무면.
此夜益州雷雨急。誰憐逐客獨無眠。
*해설 : 홍무 경오년(공양1년, 1390년, 39세) 여름인 5월에 청주에서 귀양생활을 하는 중에 나라에서 홍수의 재앙을 받은 것 때문에 하늘의 노여움을 푼다는 의미로 사면을 받게 되었는데 곧이어 또 대관들의 탄핵을 받아 익산으로 귀양을 왔다. 그날 밤에 번개와 벼락을 치며 큰 비가 내렸으므로 다음날 숙소의 벽 위에 이 시를 썼다. 때는 백로절 9일 뒤이다.
-익산[(益州]에 이르러-
청주[서원]에 있던 그날 홍수 하늘에 닿을 듯해
과오로 지은 죄를 용서하는 은해 내렸는데.
이날 밤 익산에 천둥과 번개 급박하게 일어나니
쫓겨난 나그네, 잠 못 드는 걸 불쌍히 여겨선가?
*낱말
1.익주益州 : 전주의 옛 이름 익산益山을 지칭.
2.종편從便 : 죄지은 사람을 사면赦免하여 서울 밖의 편리한 곳에 가서 살게 한 일.
3.서원西原 : 청주淸州의 옛 이름.
<남행록南行錄>(二)
중추中秋
(1)
거세봉추제로동, 여금적재익산중.
去歲逢秋齊魯東。如今謫在益山中。
연년가절사귀객, 득주수안우일홍.
年年佳節思歸客。得酒愁顔又一紅。
(2)
추풍옥로세은하, 월색유래차야다.
秋風玉露洗銀河。月色由來此夜多。
추창부운능폐일, 정배일문욕여하.
惆悵浮雲能蔽日。停盃一問欲如何。
*自註。是日密雲。
(3)
동노취적로승가, 건부호래파비파.
僮奴吹笛老僧歌。蹇父呼來把琵琶。
수신양촌다흥미, 적래기사역감과.
誰信陽村多興味。謫來奇事亦堪誇。
*해설 : 중추(中秋 : 음력 8월)
이글도 앞의 시와 마찬가지로 작자 39세 때 귀양 생활 중에 쓴 시로서 운의 구조로나 대구 등의 형식으로 볼 때 절구 3수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
(1)
지난핸 사신 행차 중국[齊魯]에서 맞았는데
지금은 귀양 중에 익산에서 맞이했네.
해마다 중추가절에는 고향 돌아가고 싶은 나그네
술을 마시자 수심에 잠긴 얼굴 또 한번 붉어지네.
(2)
가을바람 옥 같은 이슬이 은하를 씻어 내린 듯
이날 밤의 달빛은 예로부터 유별나게 밝았었지.
애닲다, 뜬 구름 같은 간신들 임금총명 가리니
술잔 들고 앉아 한번 묻노라, 어떻게 하려는지.
*자주自註 : 이날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음.(작자는 다음에 독자들의 오해를 풀기 위해 주를 낸 듯)
(3)
어린 종놈 피리 불고, 늙은 중 노래하니
건부를 불러다가 비파 줄을 뜯게 하였네.
그 누가 나 양촌이 흥 많다고 믿었나봐,
귀양생활 중에 기이한 일이라 자랑할까?
<남행록南行錄>(三)
봉사전주쉬奉謝全州倅
--全州倅歸妓不納。後又惠餚酒。以詩奉謝--
빈사선탑학관공, 만경구연색즉동.
鬂絲禪榻學觀空。萬境俱捐色卽同。
단자미능제구업, 홀승향미감심충.
但自未能除口業。忽承香味感深衷.
*해설 : 전주 원에게 감가함
--전주의 원[全州倅]이 기생을 보내 주었으나 받아들이지 않자, 뒤에 또 안주와 술을 보냈으므로 시를 써 보내어 감사함을 표함.--
흰 머리로 선탑에서 공의 세계 배우면서
온갖 경지 버렸으니 여색 또한 버렸었네.
다만 먹는 업보만은 버릴 수가 없었는데
문득 좋은 맛 받으니 진심으로 감사하이.
*낱말
색공色空 : 불교용어의 색즉시공色卽是空에서 온 말.
<남행록南行錄>(四)
경오제애庚午除夜
차일시제야, 금오재이향.
此日是除夜。今吾在異鄕。
청등조수암, 백발대수장.
靑燈照睡暗。白髮帶愁長。
산해신류락, 정위몽묘망.
山海身流落。庭闈夢眇茫。
하혐초췌구, 명발득소광.
何慊憔悴久。明發得韶光。
*해설 : 경오년(공양1년, 1390년, 39세) 섣달 그믐밤
오늘이 바로 섣달 그믐밤인데
지금 나는 타향에 와 있다네.
푸른 등불은 어둠 속 자는 모습 비추고
흰 머리는 근심 때문에 더 많이 자라네.
산촌과 해변에 나의 몸 떠돌아다니니
부모님 얼굴 모습 꿈속에도 아득하네.
오랜 고생으로 초췌한 모습 탓하랴?
내일이며 화창한 봄날을 맞을 텐데.
<남행룍南行錄>(五)
신미원월辛未元月
사십이운로, 차언금신연.
四十已云老。此言今信然。
투생삼출후, 미사백년전.
偸生三黜後。未死百年前。
취몽공명오, 궁수학술편.
醉夢功名誤。窮愁學術偏。
감희신불동, 요탕약정현.
敢希心不動。搖蕩若旌懸。
*해설 : 신미(공양3년, 1391년, 40세) 정월[元月]
사십이면 벌써 늙었다고 이르는데
이 말 지금 생각하니 믿을 듯하네.
세 번 쫓겨나서도 살 수 있으니
백 년 되기 전에는 죽지 않겠네.
공명에 취한 꿈이 일생을 그르치어
궁한 근심 속에 학술에만 치우쳤네.
마흔 살이라고 감히 불혹을 바랄까?
매달린 깃발처럼 흔들려 몸부림치네.
<六> 전하문안태상왕殿下問安太上王
--辛巳冬十月初九日。太上王浴于平州溫井。殿下問安。次于歧灘。其夜微雪--
상궁서수욕온천, 성문신심일익연.
上宮西狩浴溫泉。省問宸心日翼然。
금위효엄래야외, 행주모설만강변.
禁衛曉嚴來野外。行廚暮設滿江邊。
한성미세삼경설, 난기환첨만조연.
寒聲微洒三更雪。暖氣還添萬竈煙。
차지석증배우렵, 수지금일승당년.
此地昔曾陪羽獵。須知今日勝當年。
*해설 : 전하께서 태상왕을 문안함
--신사년(태종1년, 1401년, 50세) 10월 9일 태상왕(태조)이 평주 온천[溫井]에서 목욕하고 있는 때, 전하(태종)가 문안하러 가서 기탄에 묵었다. 그날 밤에 눈이 조금 내렸음.--
상왕이 서쪽에 순행하다 온천에 목욕니
문안드리려는 임금 마음 날로 간절했네.
새벽부터 금위군 이끌고 들판에 달려오니
저물녘까지 음식 장만에 강가가 가득하네.
삼경에 조금 뿌리 눈 그 소리 차가웠으나
저 많은 부엌 연기들 따신 기운 보태주네.
이 곳에서 일찍이 사냥 행차 모셨는데
오늘이 그때보다 나음을 그 누가 알랴?
*낱말
행주行廚 : 행차할 때 음식을 장만하는 임시 주방廚房임.
*작자소개
권근 [權近, 1352~1409] 본관 안동. 자 가원(可遠) ·사숙(思叔). 호 양촌(陽村). 시호 문충(文忠). 초명 진(晋). 1367년(공민왕 16,정미, 16세) 성균시(成均試)를 거쳐 이듬해 문과에 급제, 춘추관 검열이 되고, 우왕(禑王) 때 예문관응교(藝文館應敎)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를 거쳐, 성균관 대사성 ·예의판서(禮儀判書) 등을 역임하였다. 창왕(昌王) 때 좌대언(左代言) ·지신사(知申事)를 거쳐 밀직사첨서사(密直司僉書事)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375년(우왕 1, 을묘, 24세) 박상충(朴尙衷) ·정도전(鄭道傳) ·정몽주(鄭夢周)와 같이 친명정책(親明政策)을 주장하여 원나라 사절의 영접을 반대하였고, 1389년(창왕 1, 기사, 38세) 윤승순(尹承順)의 부사(副使)로서 명나라에 다녀올 때 가져온 예부(禮部)의 자문(咨文)이 화근이 되어 우봉(牛峯)에 유배되었다가 영해(寧海) ·흥해(興海) ·김해(金海) 등지로 이배(移配)되었다. 1390년(공양왕 2, 경오, 39세) 이초(彛初)의 옥(獄)에 연루되어 또 다시 청주(淸州)에 옮겨졌다가 풀려났다.
조선이 개국되자 1393년(태조 2, 계유, 42세) 예문춘추관학사(藝文春秋館學士) ·대사성 ·중추원사(中樞院使) 등을 역임하고, 1396년(태조5년, 병자, 45세) 표전문제(表箋問題)가 일어나자 자청하여 명나라에 들어가 두 나라의 관계를 호전시켰으나, 정도전 일파의 시기로 불안한 위치에 있게 되었다. 1398(태조 7년, 무인. 47세)년 정도전 일파가 숙청되자, 정당문학(政堂文學) ·문하부참찬사(文下府參贊事)를 거쳐 대사헌을 지내고, 사병(私兵)의 폐지를 주장하여 왕권확립에 큰 공을 세웠다. 1401년(태종 1, 신사, 50세)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으로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예문관 대제학이 되었고, 대사성 ·의정부찬성사(議政府贊成事)를 거쳐 세자좌빈객(世子左賓客) ·이사(貳師) 등을 역임하였고, 왕명으로 《동국사략(東國史略)》을 편찬하였다.
문장에 뛰어났으며, 경학(經學)에도 밝아 사서오경(四書五經)의 구결(口訣)을 정하였다. 또한 그의 《입학도설(入學圖說)》은 후일 이황(李滉) ·장현광(張顯光) 등에게 크게 영향을 끼쳤다. 그는 성리학자이면서도 문학을 존중하였고, 시부사장(詩賦詞章)의 학을 실용면에서 중시하여 이를 장려하였으며, 경학(經學)과 문학(文學)의 양면을 조화시켰다. 문집 《양촌집(陽村集)》 외에 저서 《오경천견록(五經淺見錄)》 《사서오경구결(四書五經口訣)》 《동현사략(東賢事略)》이 있고, 작품에 <상대별곡(霜臺別曲)>이 있다.
# by | 2009/11/18 20:02 | 고인들의 시화 | 트랙백 | 덧글(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