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9월 29일
(150)택당 이식 선생의 유조遊釣臺
유조遊釣臺
--송심덕용설가남귀送沈德用挈家南歸--
고시육편古詩六篇
作者 : 택당澤堂 이 식李 植飜譯 : 청계淸溪 조면희趙冕熙
出典 : 澤堂先生集卷之一
<一>
溪臺雪已盡。浩浩淸流過。
蘭芽始萌達。柳條初婭姹。
靑春方淡蕩。白日自閑暇。
斯時不共歡。世事一埤我。
高談稍可縱。親愛咸在座。
*해설 : 조대에 노닐며,--심덕용이 가족을 인솔하고 남쪽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환송하며--
고체시 6편을 씀.
시내와 조대에 눈은 이미 다 녹아맑은 물 거침없이 흘러 내려가네.
난초는 이제 막 싹이 돋아나고버들가지도 예쁜 잎이 피어나.
푸른 봄은 무르익어 가려고 하고밝은 해는 한가로이 하늘에 떴지.
이러한 때 함께 즐기지 못하니세상사 나를 저속하게 만드는군.
고상한 이야기 애써 좀 풀려는데친애하는 사람들 모두 모여 있네.
*서시序詩로 이별의 아쉬움과 앞으로 하려는 내용 제시, 백일白日은 총명한 임금의 비유.*유조대遊釣臺 : 유조대라는 곳은 찾을 수 없고 조대에 대해서는 낚시 놓는 바위나 돌무더기를 조대라는 명칭으로 쓰는 곳이 중국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에도 많이 있음.
<二>
溪毛可以湘。濁醪可以揮。
中觴忽不樂。故人從此辭。
浮雲日已遠。嶺陸曠無期。
努力勉素守。德音俾莫違。
물가에 나물은 삶아 안주로 삼고탁주에 취해 슬픔도 발산하자고.
술에 취하자 갑자기 슬퍼지는 것은고인이 지금 떠나려 하기 때문일세.
구름에 가린 해는 이미 멀어졌으나산과 들판은 넓어 만날 기약 없네,
애써 평소의 소신을 굳게 지키어훌륭하다는 소식 들리도록 하게나.
*이별한 뒤의 부탁 : 술맛이 갑자기 없어지며 고인이 떠나게 된 동기와 앞으로의 부탁.*구름에 가린 해는 : 권간權奸 들에게 가린 임금.
<三>居人重別離。遊子輕行役。
人事固以然。所悲寒暑易。
惻惻臨衢岐。靡靡踰阡陌。
回風卷行塵。不見征馬跡。
이곳 나는 이별이 서러운데떠나는 그대 발길도 가볍군.
사람의 일은 본래 그러한 것이나계절이 잘도 바뀌는 것이 섧다오.
이별의 갈림길에서 서러하며느릿느릿 언덕길을 넘어가네.
돌게 바람 떠나는 길 먼지 휩쓸어가는 말의 발자국도 볼 수 없다오,
*벼슬을 버린 친구를 축하하고 보내는 이의 마음은 안타까움을 표현.*옛사람들은 벼슬길에 나가면 두렵다고 하고 물러가면 축하하였음.
<四>磔磔山鷓鴣。擧族本三河。
北風吹短翮。南移炎海涯。
黃雲苦竹林。盡日鳴相和。
非無燕雀欺。幸免矰弋加。
回語雁門壻。歲晩期無他。
끼룩끼룩 우는 저 산의 자고새온 가족이 서울에서 살았었지.
추운 북풍은 짧은 날게 밀치어남쪽의 바닷가로 옮겨 간다네.
고죽령의 대숲에는 사나운 구름 끼니온 종일 울며불며 서로들 부르짖네.
그곳에도 작은 새들의 모함은 있겠지만화살에 맞을 염려 없음이 다행이라오.
안문 지방 사위에게 대답해 보내노니,늘그막의 결심은 달리하지 않겠노라고.
*반드시 고향을 찾는 자고새를 빌어다가 서울을 떠나지 않을 수 없는 친구의 앞날을 부탁.*낱말 : 삼하三河 : 낙양(洛陽) 근처의 강물. 여기서는 서울을 가리킴. 옛글에 서울을 낙양이라고 흔히 썼음.
3.북풍北風, 황운黃雲 : 거친 세파世波,
4.연작기燕雀欺 : 사람들끼리 부딪치는 작은 사건들.
5.증익가矰弋加 : 벼슬길에서 죽임을 당하는 일.
<五>梁鴻竄會稽。孟光謝粧梳。
阿戎已見器。道鞰才有餘。
況携姜肱被。共扶潘岳輿。
人生此獨難。餘外可頓除。
公但讀書策。何方不宜居。
양홍이 회계지방으로 귀양 가니아내 맹강은 화장을 하지 않았지.
아융은 큰 그릇이 될 조짐을 일찍 보였고도온도 재주가 흘러넘침을 어릴 때 알았지.
게다가 강굉처럼 아우를 데리고 떠나니반악처럼 함께 어머니를 수례를 모시게.
인생살이에 우애와 효도가 가장 어려운 것그 밖에 나머지들이야 안 하여도 그만일세.
그대는 오직 책이나 읽고 주역이나 점치면어디 가더라도 살만하지 않은 데가 있겠나?
*이 단락은 여러 자식들과 함께 형제간에 우애와 효도하며 사라는 부탁. 형제도 같이 고향으로 가는 모양.*낱말
1.양홍梁鴻과 맹광孟光 : 동한시대의 은사隱士 부부, 내외간에 서로 존경하기로 본보기가 된 인물. 위에 등장한 인물들의 자세한 내용은 번역원 국역본을 참고하기 바람.
2,아융阿戎과 도온道鞰 : 똑똑하고 재주있는 아들 딸 들의 비유.
3.강굉姜肱과 반악潘岳 : 형제간의 우애와 부모에 대한 효자의 본보기,
<六>煌煌嵩善鄕。邈哉多前修。
其人骨已朽。存者尙可求。
逝欲從君去。將駕且復休。
古今不同趣。賢愚非一流。
片語或齟齬。終身遺悔尤。
不如讀我書。反身師孔丘。
빛나고 빛나는 고을 선산 지방은옛날에 훌륭한 선현들이 많았지.
그분들은 이미 죽어 사라졌지만남긴 자취 아직도 찾을 수 있네.
나도 그대 따라 가고 싶어서말 멍에를 얹었다가 내렸네.
예와 지금의 취미가 다르고어질고 어리석음도 달라서.
말 한마디 어긋나기만 하면한평생 후회와 근심 남으리.
내가 배우던 책이나 읽으면서몸을 반성하며 공자나 섬기리.
*마지막으로 자신도 따라가고 싶으나 현실이 허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칫하면 모함에 빠질 수도 있으므로 스스로 반성하며 책이나 읽겠다고 체념함
*낱말1.자고鷓鴣 : 중국 남쪽 지방인 장강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사는 새인데, 북쪽지방에 사는 자고새들은 날아갈 때 반드시 남쪽으로 향한 날개를 먼저 펴고 또 늘 남쪽으로 날아가려고 함. 그래서 남쪽지방의 인사가 고향을 그릴 때는 반드시 자고새에 비유함. 반대로 북쪽 지구에 사는 사람은 고향을 그리는 것을 호마에 비유함.
곧 중국고시중에 ‘…胡馬嘶北風,越鳥巢南枝。… 浮雲蔽白日,遊子不顧返。…’ 북쪽 지방의 말인 호마는 북풍을 향하여 울부짖고, 남부지방이 새인 월조는 남쪽 가지에만 둥지를 튼다(각자 고향의 그리움). 뜬구름(간신의 비유)이 태양(임금의 총명)을 가리는데(나라는 혼란한 데) 벼슬하러 떠난 자식은 돌아오지 않네.‘ 여기서 월조는 자고새로 보아도 됨.
2. 고죽림苦竹林 : 고죽은 대나무의 일종. 낙양과 장강 사이에 있는 산으로 고죽이 많은 산인 고죽령苦竹嶺의 숲을 뜻함. 백거이白居易의 <산자고山鷓鴣>에 ‘苦竹嶺下寒月低. 夢鄉遷客輾轉臥, : 고죽령 아래로 차가운 달이 지는데, 고향을 그리는 나그네 (자고새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하네.’가 있음.
3.숭선嵩善 : 선산(善山)의 옛 이름이다. 야은(冶隱) 길재(吉再)와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고향이다.
*이백의 시 소개호안서胡雁壻
작자 : 청연거사 이백靑蓮居士 李白번역 : 청계자 조면희淸溪子 趙冕熙
苦竹嶺頭秋月輝,苦竹南枝鷓鴣飛。嫁得燕山胡雁壻,欲銜我向雁門歸。
山雞翟雉來相勸,南禽多被北禽欺。
紫塞嚴霜如劒戟,蒼梧欲巢難背違。
我今誓死不能去,哀鳴驚呌淚沾衣。
*해설 : 호안의 사위
고죽령 마루에 가을 달 밝은 데고죽 남쪽 가지에 자고새 나네.
북쪽 연산 호안의 사위에게 시집가서편지 가지고 안문재 넘어 돌아오려니.
산닭이나 꿩들이 와서 서로 권유하길남쪽 새는 북쪽 새에게 기만당한다고.
열하지방의 된서리는 칼날과 창끝 같아창오산에 깃들려도 떠나오기 어렵다네.
나는 죽어도 갈 수 없다고 맹서하며슬피 울부짖어 눈물이 옷깃을 적시네.
*이시는 북쪽지방으로 가기 싫은 심정을 자고세에 가탁假託하여 읊은 것인데, 이글은 어떤이가 이백에게 북쪽지방으로 가서 벼슬을 하라고 권유하자 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표현했다고도 하고, 또 남부지방의 어떤 여자가 북쪽 사람에게 시집 가라고 하니 죽어도 못가겠다고 하며 울부짖어 이백이 그 광경을 보고 지었다고도 함. 출전 : <이백집주도李白集駐圖>*자세紫塞 : 중국 북쪽 열하熱河지방. 연산燕山, 안문雁門도 다 북족 지구. 고죽은 중간. 창오는 남쪽임.
*작자 소개이식 [李植, 1584~1647] : 본관은 덕수(德水)이며 자는 여고(汝固), 호는 택당(澤堂)이다. 1610년(광해군 2) 문과에 급제하여 7년 뒤 선전관이 되었으나 폐모론(廢母論)이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택풍당(澤風堂, 양평군 향토유적 제16호)을 지어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낙향하여 은거한 후 수차례에 걸친 왕의 출사(出仕) 명을 계속 거부하여 1621년(광해군 13)에는 왕명을 어겼다 하여 구속되기도 했다. 1623년 인조반정 후 이조좌랑·예조참의·동승부지·우참찬 등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대사간·대사성·좌부승지 등을 지냈으며, 1633년 부제학을 거쳐 대제학과 예조참판·이조참판을 역임하였다.
1642년(인조 20) 김상헌(金尙憲) 등과 함께 척화(斥和)를 주장하여 심양(瀋陽)으로 잡혀갔다가 돌아올 때 다시 의주(義州)에서 구치(拘置)되었으나 탈주하여 돌아왔다. 이후 대제학·예조판서 등을 역임하였으며, 1647년(인조 25) 택풍당에서 세상을 떠났다.
장유(張維)와 더불어 당대의 이름난 학자로서 한문4대가(漢文四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선조실록(宣祖實錄)》의 수정을 맡아 하였다. 시호는 문정(文靖)이고, 저서로는 《택당집(澤堂集)》, 《초학자훈증집(初學字訓增輯)》 등이 있다.
----인터넷 두산백과사전에서 인용---
*이시에 나타난 심덕용선생에 관한 내용번역원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황재운선생의 코멘트를 여기에 옮겨보았음.
“ 심명세(沈明世(1587~1632, 德用은 字)와 그의 형인 沈光世(1577~1624, 德顯)가 같이 중앙조정에서 벼슬하였던 것을 비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 더 나아가자면 아버지가 현감을 지내고, 할아버지가 참판을 지내고, 고조할아버지가 영의정을 지낸 것을 말하며, 이 집안에서는 반드시 벼슬을 하여서 조정이 곧 본적지와 같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5행과 6행인 ‘黃雲苦竹林 먼지 낀 누런 구름 대나무숲 속에서 盡日鳴相和 온 종일 화답하며 울어 대리니’라는 부분은 권 9의 [送沈德用移居善山序]의 다음의 부분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 뒤 계축년(1613년)에 덕현씨가 세상의 화망(禍網)에 걸려들어 생사의 위기에 봉착하면서 극심한 고초를 겪게 되었는데, 다시 살려 주시는 천지 신명의 은덕을 입어 내쫓기는 처벌만 받고는, 남쪽 해변의 산과 계곡이 있고 물고기와 벼 곡식이 자라는 시골에 거하는 몸이 되었다. 이에 권속(眷屬)을 함께 데려와 경치 좋은 곳을 골라 차지를 하고는, 밭 갈고 고기를 낚으며 소요(逍遙)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등 마치 평소의 뜻을 얻은 듯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중략) 그러다가 금년 봄에 이르러 덕현의 아우 덕용(德用)이 선산(善山)의 금오산(金烏山) 아래로 거처를 옮겨 왔는데, 이는 덕현씨가 우거(寓居)한 곳과 거리가 가까운 것을 감안한 것이었다’
# by | 2009/09/29 17:35 | 고인들의 시화 | 트랙백(1)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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