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 . 조면희 당시감상 위응물韋應物편 기전초산寄全椒山 당시삼백수감상


239 . 조면희 당시감상 위응물韋應物편 기전초산寄全椒山

. 조면희 <당시삼백수> 고시편

(). 오언고시五言古詩 중에서

 

26. 기전초산중도사寄全椒山中道士

作者 : 위응물韋應物

 

금조군재랭홀념산중객

今朝郡齋冷忽念山中客

 

간저속형신귀래자백석

澗底束荊薪歸來煮白石

 

욕지일표주원위풍우석

欲持一瓢酒遠慰風雨夕

 

낙엽만공산하처심행적

落葉滿空山何處尋行跡

 

전초산중에 숨어사는 도사에게 부쳐 보냄.

 

오늘 아침에 군청 방이 쓸쓸하여,

문득 산에 사는 도사가 생각났네.

 

개울 가에 나가 가시나무 베어와,

불을 때어 흰 돌들을 구워먹겠지.

 

한 표주박의 술이라도 들고 가서,

비바람 치는 저녁에 권하고 싶네.

 

하지만 낙엽이 산에 덮여 있으니,

어디 가서 그가 간곳을 찾겠는가?

 

 

*감상

. 내용 : 날씨가 싸늘한 가을 아침에 문득 전초산중에 숨어 도를 닦는 친구 생각이 났다. 시인의 생각에는 아마도 그 친구가 이 쓸쓸한 아침에도 산골짜기 개울가에 나가 가시넝쿨을 거두어 와서 불을 때어 옛날 신선이 먹었다는 흰 돌을 구워 먹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에 술이라도 한 병 들고 가서 그를 위로해 주고 싶으나 가을 낙엽이 온통 산에 가득 찼으니 갈 길을 찾을 수 없음을 안타까워함.

 

. 측성으로 입성入聲 11 을 압운한 전부 8구의 오언 고시.

*낱말

1. 군재郡齋저주자사滁州刺史의 청사 중에 재사齋舍

. 백석白石 : 신선이 흰 돌을 구워서 양식으로 삼았다는 전설에서 나온 말로 청고淸苦한 생활을 뜻함. 출전 :신선전(神仙傳)

3. 재사齋舍 : (1). 생활하는 방[家居的房舍] (2). 학생들이 공부하는 방 곧 학사學舍

 

*작자소개

위응물(韋應物 737~ 792) : 경조京兆 사람으로 당()나라 때의 관리이자 시인이다. 15세에 삼위랑三衛郎이 되어 현종玄宗을 가까이서 모셨다.

 

위응물은 대종 광덕(廣德) 2년인 764년부터 덕종 정원 7년인 791년까지, (, 후베이성 내)현령, 원외랑(員外郎), 저주(滁州, 지금의 안후이(安徽)성 추저우시) 자사, 강주(江州, 지금의 충칭(重慶)) 자사, 좌사낭중(左司郎中), 소주(蘇州, 지금의 장쑤성 쑤저우시)자사 등 여러 벼슬을 역임했는데, 거의 30년간 대부분의 시간을 도성 장안(長安, 지금의 시안(西安))이 아닌 지방 관사에서 보냈다. 세간에서는 그를 위소주(韋蘇州)’, ‘위좌사(韋左司)’라고 불렀다.

 

덕종 정원(貞元) 7년인 791년에 소주자사의 임기가 끝나 퇴직한 그는 새로운 임무를 받지 못했고 생활에 쪼들렸는데, 장안으로 돌아갈 여비도 없어서 소주의 무정사(無定寺)에서 기거하다가 다음 해에 55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네이버 지식백과]--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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